[동아마라톤/D-23]한국마라톤 「기록의 산실」

  • 입력 1998년 3월 5일 19시 57분


동아마라톤은 한국마라톤의 살아있는 역사. 일제암흑기에는 한민족 희망의 축제로, 해방후에는 기록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당시로선 인간한계로 여겨진 2시간30분벽을 돌파하며 월계관을 썼던 손기정은 동아마라톤과 함께 성장한 영웅.

동아마라톤은 역대 한국신기록 16개중 절반인 8개를 배출했다. 해마다 조금씩 기록을 단축시켜온 동아마라톤은 66년 제37회 대회에서 김복래가 2시간19분07초로 우승, 처음으로 2시간20분대 벽을 허물었다.

70, 73, 74년 한국 최고기록을 탄생시킨 동아마라톤이 ‘마의 15분벽’을 넘어선 것은 84년 이홍렬이 2시간14분59초를 기록하면서. 90년대초는 ‘기록 제조기’로 불린 김완기의 무대였다. 그는 90년 대회에서 2시간11분34초로 우승하는 등 네차례나 한국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손기정의 일장기 한을 씻어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에게 있어 동아마라톤은 깜짝 데뷔와 눈물의 은퇴식을 함께 치른 영욕의 무대. 풀코스에 첫 도전한 91년 대회에서 3위에 올라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는 이듬해 일본 벳푸―오이타대회에서 2시간08분47초로 결승선을 통과, 슈퍼스타로 발돋움했다.

첫 국제대회로 치러진 94년에는 김완기(2시간08분34초)가 비록 우승은 마뉴엘 마티아스(포르투갈)에게 1초차로 뺏겼지만 한국 최고기록을 수립, 출발부터 세계 정상급 대회로 떠올랐다.

96년에는 이봉주(코오롱)가 2시간08분26초를 마크, 황영조가 94년 보스턴에서 세운 2시간08분09초의 최고기록에는 못 미쳤지만 국내대회 최고기록으로 남았다.

〈장환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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