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9월22일 밤 11시.
리우데자네이루 파르메이라스축구팀 숙소에서 ‘탕’하고 한발의 총성이 울렸고 이 팀의 선수인 지오베르트가 쓰러졌다.
같은 팀 선수인 아마라우가 동료들에게 러시안룰렛게임을 보여주려다 발생한 오발사고였다.
운명의 장난일까. 지오베르트가 쓰러진 그 시간 인근병원에서 한 새 생명이 태어났다.
이 아이의 부모는 건강한 셋째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받아준 의사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그 이름 ‘호나우두’. 금세기말 최고의 축구황제는 이렇게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호나우두가 태어난 벤트 리베이로는 지독히도 가난한 동네였다. 가난에 찌든 어머니 소냐는 셋째가 커서 의사나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어렸을때부터 자신처럼 빈민가에서 태어나 축구영웅이 된 지코를 동경했다. 아버지를 졸라서 마라카낭 경기장에 그의 플레이를 보러 갔다. 수업을 빼먹는 것은 다반사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지저분한 뒷골목이나 공터에서 볼차기에만 열중했다.
호나우두가 초등학교 7학년때 8과목 중 7과목에서 낙제하자 어머니 소냐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해온 뜻을 굽혔다.
89년 실내축구팀 소샬 라모스의 선수가 된 호나우두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득점타이틀을 휩쓸었다.
1년후 그는 지역 명문 상크리스토방 클럽에 가입, 경기에 ‘겹치기 출연’을하게됐다. 상크리스토방에서 호나우두를 지도했던 멕시코월드컵의 영웅 자이르징요는 이 ‘신동’앞에 펼쳐질 눈부신 미래를 일찌감치 예감했다.
“그의 움직임은 예술 그 자체다. 공은 발에 착 달라붙어 있고 엄청난 스피드로 드리블을 한다.”
마침내 호나우두는 17세때인 93년 크루제이로로 이적, 프로의 길을 걷게 된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