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넘어간다는 그의 업어치기는 각이 밋밋했고 다리는 중심축이 되지 못하고 후들거렸다.
잡기싸움에서도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자신있게 상대를 잡아끌지 못하고 되레 끌려 다녔다. 무슨 이유였을까. 무릎십자인대의 부상이 아직도 다 낫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실 전기영은 지쳐 있었다. 대표팀 탈락이 확정된 후 한 구석에 앉아있는 그의 표정은 차라리 홀가분해 보였다.
“무릎부상이 완쾌되지 않은데다 그동안 석사논문 쓰느라 거의 한달간 훈련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솔직히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공부해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전기영이 누구인가. 93,95,97년 세계선수권대회 3연속 제패.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 95년 아시아 선수권우승 등 태극마크를 단 92년이래 그는 86㎏급 세계최강자로 군림해왔다.
12월 방콕아시아경기에서 우승하면 한국유도사상 처음 ‘유도 그랜드슬램’을 이루게 된다. 전기영인들 왜 그걸 이루고 싶지 않을까.
“이번에 대표팀에 발탁되면 다시 12월까지 태릉선수촌에서 금메달의 부담 속에 수도승처럼 생활해야 하는데 이젠 그것이 갈수록 불안하고 초조해져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의 자리. 그곳에 선 전기영은 이제 승부사가 아니라 유도를 즐기고 사랑하는 ‘보통 유도인’으로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듯 했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