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동네 뒷동산에 오르듯 쉽게 오르는 낮은 산. 탁 트인 전경과 둥근 분화구….
절로 깊은 숨을 들이쉬게 해 새로운 삶의 활기를 충전시켜주는 곳. 그 곳에 오르면 새로운 제주를 발견할 수 있다.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로 불리는 제주에서 또 하나 많은 것이 바로 이 오름이다. 오름(기생화산구·寄生火山丘)은 작은 봉우리들을 일컫는 제주도 방언. 모두 3백68개가 섬 곳곳에 흩어져 있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성산 일출봉은 이미 관광지로 개발된 오름.
제주의 오름이 최근 새로운 것을 찾는 여행객들에 의해 ‘트레킹’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까지 표지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일정한 입구와 등산로가 없어 접근이 어려운 것이 흠.
그러나 곳곳에 다양한 높이의 오름이 펼쳐져 있어 노인 또는 어린이와 함께하는 가족나들이에서 산행을 즐기는 아마추어 등산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기호와 체력에 맞춰 오름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제주 섬을 만들었다는 전설속의 ‘설문대할망’의 손길로 빚은 것 같은 다양한 모습의 오름을 만나보자.
▼아부오름〓지도에는 해발 3백1m(표고)라고 표시돼 있지만 실제 등산하는 높이는 51m에 불과하다. 짧은 등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까지 오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발 아래에는 78m나 땅 속으로 꺼져 내린 분화구가 펼쳐져 있다. 최근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촬영장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용눈이오름〓마치 용이 누워있는 것 같은 모습의 오름. 송당에서 성산쪽으로 가는 도로변에 손자봉과 이웃해 있다. 도로변 입구에는 하얗고 조그만 나무표지판에 향유화군락지라고 표시돼 있다. 향유화가 붉게 핀 가을철이 제격이지만 오름기행의 맛인 ‘정상에서 경치를 즐기기’에는 사시사철 좋은 곳. 오른쪽으로는 성산 일출봉이, 왼쪽 끝으로는 우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바다가 확 트여있다.
이외에 매끈한 곡선미가 유달리 아름다운 북제주군 세화리의 다랑쉬와 아끈다랑쉬 오름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아끈’은 작다는 뜻의 제주방언.
병든 할머니의 약을 구하려다 절벽에서 떨어진 누나를 그리워하며 울던 동생 노꼬의 눈물(노꼬물)이 전설로 남아 지금도 약수로 흐르고 있다는 노꼬물오름(수월봉) 등 제주의 오름에 얽힌 갖가지 전설도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오름산행 동호회인 ‘오름 나그네’의 회원인 시인 김순이씨는 이렇게 오름여행의 맛을 그렸다.
“오름에는 빛깔이 있다 / 싸락눈이 왕소금처럼 / 얼얼하게 귓싸대기를 후려갈기는 / 그런 한겨울날 / 문득문득 찢어지는 구름 사이로 / 하늘빛은 어찌 그리 푸르른가 / 절망 속에서 움튼다는 / 희망의 빛깔이 그러하단 것일까 / 탁해진 마음의 눈빛을 맑혀주는 빛깔이 / 오름에는 지천으로 깔려있다”
▼ 찾아가는 길 ▼
제주시에서 승용차로 아부오름을 찾아가려면 제주시와 성읍민속촌을 연결하는 1113번 도로를 타고 가다 대천동 네거리에서 송당 쪽(1112번 도로)으로 좌회전해 4㎞ 쯤 가다보면 건영목장 표지판이 나온다. 목장에서 1.5㎞ 들어가면 아부오름이 나타난다. 또 성산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용눈이 오름을 만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제주시∼성읍민속마을행 버스를 타고 대천동에서 내려 도보로 1시간반 걸어가면 된다. 또는 제주시∼성산읍행 버스를 타고 송당리서 하차해 도보로 30분.
〈제주〓김경달기자〉dal@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