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이동국‘아픈만큼 성숙’…亞경기 부진이‘약’

  • 입력 1998년 12월 28일 19시 15분


잠 못이룬 나날들. 당장 축구화를 벗어버리고 싶었던 순간들.

쏟아지는 주위의 비난을 홀로 감내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그는 정처없이 길을 떠났다. 남의 눈에 띌까봐 모자를 눌러쓴 채 마스크와 안경까지 끼고 사흘간 정처없이 떠돌았다.

여기에서 비로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줄이야.

차분히 자신의 짧은 축구 인생을 돌이켜 본 그는 이제 겨우 19세에 불과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질책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신기루같은 ‘인기의 거품’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신세대 축구 톱스타 이동국(19·포항스틸러스).

올초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뛰어든 뒤 월드컵출전과 국내리그 활약 등으로 고속성장했고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는 팀 최다득점자로 우승의 주역이 됐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이후 음주파문에 휘말리면서 삐걱대기 시작했고 뒤이어 아시아경기에서는 시종 무기력한 플레이를 펼치다 빈번히 교체 당하는 수모를 당하며 나락에 떨어져 축구인생의 꽃을 채 다 피우지도 못한 채 꺾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쓰러지지 않았고 더욱 성숙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축구 실력을 냉철히 판단했다. 모자라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사실 그에게 프로무대는 고교무대보다 쉬웠다. 프로축구 중흥을 위해 고참 선수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볼을 연결했기 때문에 그는 손쉬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는 노랗게 물들인 머리모양을 원래대로 바꾸고 오로지 축구만 생각하기로 했다.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그는 27일 모교인 포철공고에서 오전 오후에 걸쳐 강훈련을 한 것을 시작으로 내년 1월4일 올림픽대표팀 소집 전날까지 개인훈련을 자청하고 나섰다.

내년에 만 20세로 성인이 되는 이동국. 그가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며 이를 악문 것은 바로 아시아경기 부진이라는 ‘보약’이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이제 그는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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