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씨름꾼 윤석찬,「수화사랑」결실 내달 결혼

  • 입력 1999년 1월 28일 18시 41분


‘드르르륵.’ 삐삐 진동음이 파고든다. 삐삐에 찍힌 0052를 확인한 뒤 약속 장소로 향한다.

007첩보영화 같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윤석찬(28·현대·78대 백두장사)은 이렇게 ‘사랑 방정식’을 풀었다. 그 결실이 다음달 7일 오후 1시반 안양중앙성당에서 동갑내기 강순심씨(회사원·울산 서부동)와의 결혼으로 피어난다.

윤석찬은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았지만 세상에 귀를 기울였다. 씨름으로 세상과 만났고 PC통신의 글로 사람들과 얘기했다.

평생의 반려자인 강씨도 PC통신으로 만났다. 강씨가 97년11월 윤석찬이 회원인 ‘수화사랑 동호회’에 가입했고 두 사람은 컴퓨터로 ‘접속’했다.

마음만 나누던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동호회원 병문안을 간 자리에서 처음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강씨는 “씨름선수라 인상이 험악하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편한 얼굴에다 마음까지 넓어 반했어요”라고 말한다.

이후 두 사람은 첨단장비를 동원해 사랑을 키웠다. 윤석찬은 강씨가 보내오는 편지를 받기 위해 팩스를 끌어안고 살았다. 삐삐 암호도 0486〓사랑한다, 7272〓삐삐쳐라, 0052〓만나자 등으로 정했다.

윤석찬은 지난해 9월 힘들지만 또렷하게 “사∼랑∼한∼다”는 말로 청혼했다. 그 한마디에 강씨는 부모님의 강한 반대를 극복해낼 힘을 얻었다.

이젠 수화가 더 자연스러운 강씨는 “경기장을 세번 찾았는데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도저히 못보겠더라고요. 울산에서 얻은 20평 아파트가 석찬씨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도록 할 거예요”라고 다짐했다.

윤석찬의 어머니 김명숙씨(56)는 기쁨에 눈물이 마를 새 없다. “석찬이를 임신했을 때 난소에 혹이 생겨 의사는 낳지 말랬는데…. 석찬이가 안들리는 게 다 내탓이에요. 석찬이가 너무 착한 배필을 만나 다행이고 한없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늘이 맺어준 사랑.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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