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도예공의 망향가에서부터 최근 한일어업협정으로 인한 우리 어민들의 시름까지…. 거친 파도가 뱃전에 포말로 부서지는 대한해협은 바닷속 깊숙이 묻어둔 한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 했다.
한국 참가정 중 가장 작은 크루저급 요트 ‘갓 스피드’에 몸을 싣고 3일 오전 11시45분 부산 수영만을 출발해 일본 후쿠오카 하카타항까지 1백7해리(약 1백98㎞)의 대장정.
파도가 다소 거셌지만 초속 6m의 남서풍이 불어 순탄한 여정을 예고하는 듯 했다. 한시간쯤후 파도가 잔잔해지며 멀리 쓰시마섬이 보였다. “별 것 아니군”이라는 자만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든가. 이내 바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강해지자 크루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출발한지 6시간. 바다는 ‘성난 폭군’으로 변해있었다. 파고는 4,5m로 높아졌고 바람은 초속 13m를 넘나들었다. 뱃전에 넘쳐 흐르는 바닷물에 갑판은 물바다가 됐고 요트는 파도위로 쓰러질 듯 아찔한 곡예를 계속했다. 사위는 캄캄해졌고 젖은 몸엔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었다.
얼마후 항해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돛을 내려.”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는 것.
모터 돌아가는 기계음이 나면서 배는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아쉬움과 미련에 마음도 착잡해졌다. 배 후미로 달려가 구토를 하고난 뒤 선실로 내려가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자정이 넘었다. 허기를 참지못해 집어든 컵라면은 빗물과 바닷물이 스며들어 맛을 알 수 없다. 그래도 따뜻한 감촉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 4시. 초속 40m의 강풍이 몰아치는데 연료가 바닥났다. 크루들이 돛대에 매달려 주 돛을 다시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갑자기 우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돛이 찢어졌고 돛줄을 감는 린치마저 부러져 나갔다.
간신히 보조 돛을 펼치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녹초가 된 크루들은 주검처럼 선실에 엎어졌다.
오전 5시. 비가 그치면서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평온해졌다. 4시간 뒤 목적지인 하카타항이 아스라히 눈에 들어왔지만 환호성을 내지를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출발 24시간 20분만인 4일 낮 12시5분.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땅에 발을 디디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대한해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거친 파도와 휘몰아치는 폭풍우에 그토록 시달렸으면서도 여전히 아쉽고 정겨운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