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는 아름다운 한편의 시와 같다. 독일축구는 한치의 빈틈도 없는 박사논문 같다. 영국축구는 또 어떤가. 그것은 신문기 사체 같이 건조하고 선전포고문 같이 단순 명료하다.
축구엔 그 나라 민족성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똑같이 둥근 공을 차지만 차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는 재미있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키신저가 이 점을 놓칠 리 없다.
『축구는 단순 한 스포츠가 아니라 국민성이 나타나는 경기 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다』 그렇다. 축구엔 그 나라 국민성을 바탕으로 개인기 팀워크 전술의 세가지가 절묘하게 얽혀 있다.
이탈리아 축구는 아예 전반전은 안보는게 낫다. 후반전도 초반까진 하품이 나온다. 두드리고 두드려도 이탈리아의 수비진은 걷어내고 또 걷어낸다. 이탈리아인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카테나치오」(빗장수비)라고 부른다.
도대체 그게 뭐가 자랑스러울까. 그러나 기억하라. 그들은 일찌기 제국을 경영한 로마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들의 장점 중 하나로 「참아야 할 때 참을 줄 아는 것」을 꼽았다.
그 유명한 카이사르(시저)의 전술은 힘을 응축했다가 기회가 생기면 바람처럼 달려가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리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탈리아 축구의 비밀이 있다. 상대가 지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참고 또 참았다가 허점이 보이는 순간 번개처 럼 상대 골문을 향해 남은 모든 화력을 쏟아 붓는다. 바로 그 한 장면으로 팬들은 그 때까지의 지루함을 순식간에 잊는다.
◇伊로마식 힘빼기 전법, 獨게르만식 돌격형
이에 비해 브라질 축구는 벚꽃처럼 화려하다. 공을 넣는 것도 환상적이지만 그 과정도 5월 산허리에 붉게 물든 철쭉무리만큼이나 황홀하다. 삼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리오 축제의 아가씨들처럼 부드럽고 리드미컬하다.
패스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상대 문전을 향해 돌진하는 동료의 오른발에 얹어줄지 왼발에 얹어줄지, 혹은 달려가는 탄력을 감안해 머리에 맞춰줄지 가슴에 트래핑하도록 해줄지까지 생각해 패스한다.
독일의 마테우스나 한국의 홍명보처럼 허리 에서 지휘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물론 둥 가가 팀의 리더이지만 일일이 지시하기보다 정신적인 맏형 노릇이 고작이다. 팀 전체가 생고무처럼 약동한다. 인위적인 작전보다 순간의 상황에 따라 공을 찬다.
모두들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산책이라도 나온 듯 몸에 전혀 힘이 들어 있지 않다. 오죽하면 브라질 축구를 「워킹 풋볼」이라 부르겠는가.
왜 브라질 축구는 이렇게 발전했을까. 덥고 건조한 기후를 그 첫째 이유로 꼽는다. 날씨 가 더운 곳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추운 곳 사람보다 체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대신 몸이 유연해 기술쪽에선 우위다.
일부에선 가난과도 연결짓는다. 공 하나만 있으면 골목, 공장터, 해변 모래사장, 풀밭 등 어디서든 공 을 차던 것이 자유분방함을 낳았다는 것. 한 마디로 브라질 축구는 선수 개인의 상상력에 의해 이뤄지는 예술작품이다.
독일 축구는 한마디로 독일 전차군단과 비슷 하다. 게르만민족의 기질이 그대로 배어 있다. 전쟁을 하듯 사령부를 두고 소대 분대전 투까지 일일이 작전을 세운다. 일단 작전이 수립되면 그에 따라 수백 수천번 연습을 되풀이한다.
만에 하나 실수할 경우까지 상정 해 그것까지 훈련한다. 플레이가 빈틈없고 합리적이다. 독일제 기계처럼 튼튼하다. 바로 월드컵 예선 때의 차범근 축구가 그렇다.
패스도 직선적이고 빠르다. 태클도 무시무시 할 정도로 거칠다. 독일과 경기할 때 체력으로 밀어붙이려 하면 결과는 뻔하다. 독일을 이기는 길은 브라질처럼 부드럽고 창조적인 축구를 하거나 체력이나 작전에서 독일을 압도하는 수밖에 없다.
독일 축구는 사관생도 처럼 절도있고 규칙적이다. 그래서 독일 축구는 곧잘 일사불란한 교향곡이나 행진곡으로 일컬어진다.
◇브라질-삼바춤형, 英―몸싸움 원시축구
독일 축구의 열쇠는 지휘관의 능력에 달려 있다. 감독의 힘은 절대적이다. 감독의 순간 순간 지시에 따라 선수들은 농구선수들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운동장 안에서의 현 장지휘는 팀의 리더가 맡는다.
배켄바워 마 테우스 잠머 등 귀에 익은 스타들이 그 역할 을 했거나 하고 있는 주인공. 독일 축구를 깨려면 그 팀의 리더를 꽁꽁 묶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제 축구의 종가 영국 축구를 이야기할 차 례다. 한마디로 잉글랜드 축구는 체력을 앞 세운 몸싸움과 공중전, 격렬한 태클을 주로 하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축구다. 원시축구의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비가 많고 잔 디가 많은 섬나라 영국의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흙탕에서 뒹굴면 시원해진다. 그러나 영국축구는 지나치게 틀에 박힌 축구다. 공을 상대 문전으로 힘껏 내차고 전력으로 달려가 머리나 발로 공격하는 게 오랜 관행으로 굳어졌다. 아기자기한 패스나 현란한 개인기를 보는 재미는 없다.
그런데 이것이 간단치 않다. 그 누구도 영국 을 쉽게 이기지 못한다. 그것은 축구라는 운동 자체가 투쟁적이고 단순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시시대의 「집단사냥」을 떠올리면 된다.
먹잇감을 쫓아 이리저리 몰리 는 원시인들을 생각해보라. 아무리 작전을 잘 짜고 창이나 활쏘는 기술이 현란해도 용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최후의 승자는 먹잇감의 목에 창을 꽂는 용감한 전사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게임을 보노라면 「황야의 외로운 늑대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한마디로 유럽은 직선적이고 빠르고 힘이 있는 산문적 축구를 하는데 반해 남미는 둥글고 부드럽고 시적인 축구를 한다.
그래서 유 럽축구와 남미축구가 붙으면 마치 서부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팔을 불며 지휘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병대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인디언들.
월드컵축구는 승부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은 문화와 문화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컵축구는 재미있다.
김화성〈체육부기자〉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