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가 천하를 움켜쥘까. 어마어마한 족풍(足風)과 한번 빠지면 누구도 헤어나올 수 없는 「11진법」의 독일인가.
아니면 바람 앞의 들풀처럼,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안개처럼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무형강기」의 브라질인가.
최근 중원의 정통 무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경신술로 11 진법의 그물을 바람처럼 빠져나오는 「능공허도」의 흑의방(아프리카)들은 또 어떤가.
무시무종(無始無終). 강호는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다. 누가 천하를 제패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강호는 언제나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에겐 솔직해져야 할 때가 왔다.
과연 한국은 1승을 거둘 것인가. 16강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 대답은 노. 그럼 한국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은? 답 1무2패. 이를 간단한 문답 식으로 풀어보자.
▼한마디로 멕시코와 비기고 네델란드 벨기 에에 진다는 말인가?
-그렇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것도 신이 우리 편이라는 전제하에 죽어라 하고 뛰어야 가능한 성적이다.
▼그럼 16강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래도 축구라는 것은 의외성이 있는 게 아닌가?
-의외성은 어쩌다 한번 있는 것이지 늘있는게 아니다. 94년
미국월드컵까지 15회 동안 우승해본 나라는 우루과이 이탈리아 서독 브라질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등 6개국밖에 없다는 데서도 그것은 증명된다. 공은 둥글지만 실력은 어김없이 반영된다는 뜻이다. 물론 의외성, 기적 등 「신의 몫」(God`s Share)은 논외다.
▼그렇다면 우리와 다를게 없고 키도 더 작던(167cm) 북한이
1966년 영국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그것도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꺾고 말이다.
-그 당시 북한팀과 현재 한국팀을 비교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무리다. 그들은 월드컵을 위해 3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124군부대식으로 엄청나게 훈련했다.
도대체 11명 모두가 후반 끝날 때까지 지칠 줄을 몰랐다. 빠르기도 엄청났다. 11명이 모두 서정원선수였다고 보면 된다. 패스도 짧고 정확했으며, 상대 문전에서는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다른 동료의 어깨를 짚고 헤딩하거나 헤딩하는 동료의 허리를 받쳐주는 기상천외한 「사다리전법」을 구사해 서구선수들의 얼을 쏙 빼놓았다. 더구나 이탈리아는 수비의 핵인 불가랠 리가 부상으로 퇴장하는 바람에 10명이 싸웠다.
한마디로 그들은 「축구기계」였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8강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북한 에 돌아가서 환영은커녕 박두익만 빼고 모두가 자본주의 물이 들었다는 이유로 아오지 탄광에 유배된 것도 기억하라. 축구는 스포츠지 결코 전투가 아니다.
▼그러면, 한국의 16강 진출이 왜 어려운지 좀 더 알기 쉽게
말해줄 수 없는가.
-우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박회사들의 예상을 살펴보자.
유럽에서의 축구복권에 대한 눈터지는 배팅은 우리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훌리건(유럽 축구장에 떼지어 다니며 난동 피우는 영국의 광적인 축구팬) 들이 날뛰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 「합법적 축구도박」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도박회사들의 축구정보에는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다. 가령 오늘 출전하는 A라는 선수가 지난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했는지까지 암시할 정도다. 이 중에서 영국의 윌리엄 힐과 레드 브로크스는 쌍벽을 이루는 라이벌이다. 이들이 보 는 한국 우승 확률은 어떨까. 또 16강진출 확률은 어떨까.
이 회사들이 영 미심쩍다면 비교적 공정한 미국의 스포츠 전문케이블 ESPN과 인터넷 축구전문사이트 사커넷이 보는 우승확률은 어떨까.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한국팀의 16강진출이 왜 어렵다고 보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먼저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머릿속으로 그 려보자. 네덜란드의
우승확률은 8∼14%선. 한국은 0.25∼1%선. 우선 네덜란드의 수비수 들은 황선홍 김도훈 최용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 네덜란드의 공격수도 한국의 수비수 최영일 유상철 이상헌 이임생보다 머리 하나 반만큼 크다. 여기에 한국식 측면돌에 의한 완만한 센터링은 통하지 않는다.
또 페 널티 라인 안에서는 「숨어있던 1인치도 잡아 낸다」는 197cm의 장신이며 문어발인 세계 최고의 골키퍼 반 데 사르가 두꺼비 파리채 듯 완벽하게 슈팅을 잡아챈다. 그렇다고 1대1 싸움에서 그들을 이길 한국선수가 몇이나 될까. 한국보다 더 빠르고 힘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네덜란드의 허리는 너무 강하다.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가 30m를 넘지 않는다. 숨이 막힌다. 우리의 40∼50m 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는가.
▼네덜란드는 그렇다치고 벨기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언뜻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벨기에를 이기려면 한국팀엔 「생각하는 축구」 가 필요하다. 벨기에는 주전들이 대부분 30세 이상이다. 그만큼 여우같다는 뜻이다.
허리에서 게임 메이커를 맡는 시포는 86년 멕 시코월드컵 때부터 이번이 네번째다. 이에 비해 한국은 「생각하는 힘」이 너무 모자란다. 최근 벨기에의 평가전을 보면 상승세가 눈에 띈다. 우승후보 잉글랜드에 0대 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로 이겼다. 수비가 약하다지만 실점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이 넣지도 않지만 꼭 이길 만큼 효과적으로 넣 는 팀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3-5-2 포메이션 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한국의 「생각하는 축구」는 현재의 선수로는 안된다. 지금 초등 학교 학생들이 대표선수가 되는 10년 뒤라면 모를까. 특히 왼쪽 수비력은 구멍이 너무 커 보인다. 체코와의 평가전에서도 자신의 마크 맨들만 뒤쫓다 쉽게 왼쪽 공간을 내주곤 했다.
서정원-하석주의 공격력은 인정하지만 이들의 수비력은 수준 이하다.
▼그럼 왜 멕시코는 잘하면 비길 수 있다는 것인가.
-실력은 분명히 우리보다 한수 위다. 공격도 날카롭다. 「선인장 축구」답다. 그러나 멕시코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게 있다. 평가전을 위해 너무 일찍 고향을 떠나왔다. 5월초부터 한달 넘게 유럽을 떠돌고 있다.
평가전 일지를 보자. 5월21일 노르웨이에 2대 6으로 크게 진 뒤 6월4일 사우디와 0대0으로 비긴 것은 몸이 무겁다는 뜻이다. A매치는 아니지만 5월27일 독일 분데스리가 14위팀 VfL 볼 프스부르크에 1대 4로 진것도 마찬가지다.
멕시코는 이날 전반 19분 가르시아가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전반 41분부터 후반 2분까지 7분동안 무려 4골을 허용, 수비진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한국은 이틈을 잘 노리면 비길 수 있다. 벨기에나 네덜란드는 사실상 자기나라에서 뛰는 것이나 다름없다. 94 미국월드컵에서 한국이 잘 뛰었던 것은 독일 스페인이 더위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런 이점도 사라졌다. 오직 멕시코만 우리와 같은 입장이다.
더구나 멕시코는 한국팀의 컨디션이 막 오르는 첫 게임이다. 또
한가지, 멕시코가 낮고 빠른 센터링에 약하다는 것이다. 멕시 코 수비수들은 키가 작다. 여기에 골키퍼 캄포스까지 작은 점(168cm)도 유리하다. 문제는 그에 맞춰 센터링을 올려줄 수 있는 선수가 우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이밖에 한국팀은 불안한 게 없는가.
-왜 없겠는가. 유럽팀들의 빠른 센터링에 의한 세트 플레이 때 제일 불안하다. 우리 수비는 그런 센터링에 거의 머리를 맞추지 못한다. 또 스피드 기술 순발력에서 떨어지므로 손으로 옷을 잡거나 위태롭게 발을 들 고 뒤나 옆에서 태클해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수비의 모선수는 그것이 습관이다.
최소한 경고, 아니면 퇴장감이다. 어쩌면 이번 월 드컵에서 한국은 10명이 싸우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 「페널티 킥 선상에 선 골키퍼의 불안」. 사람들은 왜 꼭 천하의 맹주를 뽑아야 직성이 풀릴까. 왜 사내들은 꼭 「힘겨루기」만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느낄까. 어쨌든 그래서 축구는 재미있고 월드컵은 더욱 기다려진다.
김화성〈체육부기자〉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