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제주도에서 끝난 백록기 전국고교축구대회.
서울 이촌동의 중경고가 마산 창신고, 안양공고 등 강팀을 연파하고 결승에 오른 후 이천실고마저 3―2로 누르자 축구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경고가 창단 2년6개월밖에 안된 신생팀이어서가 아니다. 중경고는 훈련을 안하기로 유명한 팀이었기 때문이다.
중경고 선수들은 수업을 거르는 법이 없다. 합숙훈련을 해 본 적이 없을 뿐더러 일요일은 당연히 쉬는 날.
연습은 새벽 자율학습 시간과 주중 방과후에 실시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중경고가 돌풍의 주역이 된 이유는 뭘까.
해답은 ‘즐기는 축구’다. 이들은 모두 차범근 어린이축구교실 출신.
취미로 축구를 한 만큼 승부에 연연하지 않았고 별다른 부상 없이 기본기를 탄탄히 익힐 수 있었다.
대부분 이촌동 신용산초등학교 출신. 학부모들은 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뜻을 모아 인근 용강중에 축구부를 신설했다. 여기서도 즐기는 축구는 계속됐다.
각종 대회에서 번번이 1회전 탈락의 고배를 들었지만 지도자건 학부형이건 누구 하나 안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땐 다시 인근 중경고에 새 팀이 생겼고 ‘즐기는 축구’는 시작 8년여만에 정상에 올랐다.
중경고는 고교팀답지 않게 지역방어와 공간축구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무조건 볼을 내지른 후 최전방에서 골을 결정짓는 플레이도 찾아볼 수 없다.
중학교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갈고 닦은 개인기가 그 든든한 밑바탕.
김강남 중경고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설 때만이 한국축구의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며 “학원축구도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마침 국민생활체육협의회는 27일부터 3일간 전주시 일대에서 전국의 30개 축구교실을 초청, 리그전을 펼친다.
이 대회에서 학원축구 발전의 모델 케이스를 기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02―424―0894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