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필자는 이승엽이 달구벌 밤하늘에 43호 홈런을 수놓는 순간 고인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타고난 야구소질, 투타에 걸친 맹활약, 해박한 상식을 두루 갖춘 고인이 지난해 가을 필자에게 한 말이 줄기차게 내리는 밤하늘 빗줄기를 타고 전율처럼 다가왔다.
“요즘 삼성 이승엽이란 선수 정말 대단하더군. 나무랄데가 없어. 그런데 그 친구 왜 막판에 힘이 빠져 홈런왕을 외국인한테 뺏겨. 아마 어려서 주위 기대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모양이지. 그 친구 내년에는 뭔가 해낼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고인은 자신과 같은 투수출신의 왼손잡이 타자인 이승엽에게 남다른 애정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승엽은 고인의 말처럼 ‘정말 대단한 선수’가 됐다. 이날 이승엽이 쏘아올린 홈런은 새벽에 먼저 비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대선배에게 바친 ‘향불’이 아니었을까.
허구연(야구해설가) kseven@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