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25시]장환수/감동적인 보스턴 야구팬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29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결정전 5차전이 열린 19일 보스턴 펜웨이파크.

때아닌 영하의 날씨. 겨울 외투를 껴입고 스탠드를 메운 3만3000여 보스턴 팬은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보스턴이 동부지구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 1―6으로 져 1승4패로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팬은 망연자실해 있는 선수단을 향해 어느때보다 더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다음 세기(next century)를 기약하자.”

메이저리그 초창기 단골 우승팀이었던 전통의 보스턴팀은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올해까지 81년 동안 왕좌에 복귀하지 못하는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애칭) 악령’에 시달려왔다.

이는 1920년 전설의 홈런왕 루스를 양키스에 트레이드하고 난 뒤 생긴 금세기 최악의 징크스.

그러나 팬은 만년 들러리팀 보스턴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서 손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우승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보스턴의 우승을 보고 말 것이란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보스턴 팬은 80여년간의 기다림을 뒤로 한 채 다음 세기를 기약했다. 아마 19일 보스턴 선수들이 흘린 눈물은 패배의 슬픔보다는 금세기에 팀의 우승을 보리라던 팬의 기대를 저버린 데 대한 오열이었으리라.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시키고도 한국시리즈에서 탈락한 감독은 ‘새가슴’이란 비아냥과 함께 중도퇴임의 수모를 겪어야 하는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만 지고 나면 홈팬의 야유와 쓰레기 더미를 뒤집어써야 하는 국내프로야구. 보스턴 팬이 보여준 감동을 우리는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는지.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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