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영하의 날씨. 겨울 외투를 껴입고 스탠드를 메운 3만3000여 보스턴 팬은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보스턴이 동부지구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 1―6으로 져 1승4패로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을까.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팬은 망연자실해 있는 선수단을 향해 어느때보다 더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다음 세기(next century)를 기약하자.”
메이저리그 초창기 단골 우승팀이었던 전통의 보스턴팀은 1918년 월드시리즈 우승 후 올해까지 81년 동안 왕좌에 복귀하지 못하는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애칭) 악령’에 시달려왔다.
이는 1920년 전설의 홈런왕 루스를 양키스에 트레이드하고 난 뒤 생긴 금세기 최악의 징크스.
그러나 팬은 만년 들러리팀 보스턴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서 손자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우승 장면을 본 적은 없지만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보스턴의 우승을 보고 말 것이란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보스턴 팬은 80여년간의 기다림을 뒤로 한 채 다음 세기를 기약했다. 아마 19일 보스턴 선수들이 흘린 눈물은 패배의 슬픔보다는 금세기에 팀의 우승을 보리라던 팬의 기대를 저버린 데 대한 오열이었으리라.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시키고도 한국시리즈에서 탈락한 감독은 ‘새가슴’이란 비아냥과 함께 중도퇴임의 수모를 겪어야 하는 한국프로야구. 한 경기만 지고 나면 홈팬의 야유와 쓰레기 더미를 뒤집어써야 하는 국내프로야구. 보스턴 팬이 보여준 감동을 우리는 언제쯤 보여줄 수 있을는지.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