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인천의 프로야구단 현대유니콘스 구단사무실.
투수 정민태가 사무실에 들어오자 소녀가장 서이슬양(10)은 쪼르르 달려가 정민태의 품에 안겼다.
“할머니 편찮으신 건 요즘 어떠니?” “많이 괜찮아지셨어요.”
“공부는 잘하고 있지?” “네.”
프로야구도 잘 모르고 운동장도 가본 적이 없지만 이슬이는 든든한 후원자인 ‘민태아저씨’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마음씨 착한 운동선수라는 건 안다.
정민태와 이슬이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해.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며 최고의 해를 맞은 정민태는 구단에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고 구단에서 알아본 대상자 가운데 이슬이를 택했다.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아이가 어려운 환경 때문에 고생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얘기.
성남시 금광동에서 살고 있는 이슬이는 3년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집을 나간뒤 오빠(서동호·13), 허리가 아프신 할머니와 함께 성남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소녀가장.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밥 짓고 설거지 하는데 이력이 나 있다.
우선 250만원을 도와준 정민태는 이슬이 집에 놓아준 전화기를 통해 틈틈이 시간날 때마다 안부를 물어보며 보살폈다. 올해도 200만원을 생활비로 보조해준 정민태는 “내 야구인생이 끝날 때까지 능력 닿는대로 이슬이를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민태뿐만 아니라 올해는 유난히 프로선수들의 선행이 봇물처럼 쏟아져 세밑을 훈훈하게 하고 있다.
해태를 떠나 삼성 유니폼을 새로 입은 이강철은 14일 광주시청을 방문, 불우이웃돕기성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야구선수뿐만 아니다. 프로축구 김병지(현대)는 11일 고향인 밀양의 초중고 불우학생 12명에게 6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천사표’ 정인교(기아)와 서장훈 현주엽(이상 SK) 등 프로농구 선수들은 이미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점슛, 어시스트, 득점 등을 할 때마다 성금을 차곡차곡 쌓아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프로골퍼 최경주(슈페리어)는 버디 1개를 할때마다 2만원씩을 적립하는 ‘사랑의 버디행진’을 벌이고 있다.
외국에서도 이같은 사례는 많다. 메이저리그 홈런왕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매년 100만달러 정도(연봉의 10%)를 ‘아동학대방지기금’으로 내놓는다.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선수들. 이들의 ‘사회환원’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아무나 하는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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