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톱탤런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CF모델.
운동으로 단련된 강인한 몸과 인내력의 소유자인 스포츠 스타에게도 CF모델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로 활약한 박철순은 88년 속옷 CF모델로 나섰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큰 화를 당했다.
공중으로 점프하는 장면에서 같이 출연한 도베르만종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견공이 갑자기 뛰어오르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게 탈. 이 바람에 땅에 떨어질 때 왼쪽발 아킬레스건을 다쳐 이후 1년반 동안 운동을 쉬어야 했다.
‘백만불짜리 미소’의 주인공 ‘피겨요정’ 남나리는 모 전자제품 CF를 찍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설치된 세트장에서 고난도의 트리플액슬(공중 세바퀴반돌기) 연기를 사흘 동안 해내야 했다. 트리플액슬은 체력 소모가 심해 경기를 앞두고도 하루에 많아야 5번 정도 할 수 있는 고난도 기술.
그러나 남나리는 촬영 마지막날 모니터를 본 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스스로 재촬영을 요구해 무려 15차례나 트리플액슬을 하는 ‘오기’를 부렸다.
프로축구의 ‘괴짜 GK’ 김병지(현대)는 제과업체 CF에서 감자 모형을 뒤집어쓰고 뒤뚱거리며 골을 먹는 연기를 해야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볼만 오면 막아내는 바람에 여러차례 NG 끝에 촬영을 완료.
올해 프로야구와 축구의 최고 스타인 ‘라이언킹’ 이승엽(삼성)과 ‘테리우스’ 안정환(대우)도 CF 얘기만 나오면 혀를 내두른다.
홈런왕 이승엽은 CF촬영 때 오후 6시부터 무려 11시간 동안 방망이로 공을 쳐내는 장면을 500회 이상 반복해야 했다. ‘왕체력’을 가진 혈기왕성한 이승엽도 다음날 아침에는 끝내 파김치가 됐다.
남자선수로는 드물게 화장품 광고에 출연한 미남 프로축구스타 안정환은 비를 맞는 매끄러운 피부를 보여주기 위해 12시간 동안 살수차의 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안정환은 “당시 무척 더운 날씨여서 처음에는 시원했지만 나중에는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한기가 들어 NG가 날 때마다 담요를 뒤집어썼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헬멧을 쓴 모습으로 보안경비업체 직원으로 등장했던 ‘농구천재’ 허재(삼보엑써스)와 훈련소 앞 이발소를 기웃거리는 잠깐 스타로 연기력을 보인 ‘골리앗 센터’ 서장훈(SK나이츠), 완벽한 벙커샷 자세를 보여준 ‘슈퍼땅콩’ 김미현도 고생 끝에 CF 모델로 데뷔했다.
〈권순일기자〉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