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은 “이제 우리가 기댈 언덕은 한국축구가 98프랑스월드컵에서 승승장구하는 것뿐”이라는 듯 새벽잠도 잊고 TV 앞에 앉았다. 마치 IMF 탈출구가 월드컵에 있는 것처럼.
스포츠란 무엇인가. ‘스포츠스타’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주는 ‘또 다른 나’인가.
▽스포츠는 ‘여우사냥’〓철학자 엘리아스는 ‘문명과정론’에서 스포츠는 중세 영국 귀족들의 여우사냥에서 출발했다고 썼다. 당시의 여우사냥은 사람들은 무기를 쓰지 않고 사냥개가 여우를 추격해 죽이는 것.
그 옛날 인간이 먹잇감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짐승과 부딪쳐 피를 흘리던 ‘고통과 쾌락’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인간은 사냥개와 여우가 벌이는 쫓고 쫓기는 행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한마디로 인간의 잔인성을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없애 버린 것. 그러나 인간은 잔인성을 순화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 바로 스포츠가 탄생한 이유다.
▽왜 알리인가?〓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폭력적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때린다는 건 법이나 이성이 허락치 않는다. 여기서 인간을 대신할 ‘사냥개’가 필요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하마드 알리였다면 너무 심할까. 알리가 조지 포먼을 때려 눕힐 때 우리는 마치 우리가 포먼을 눕힌 것 같은 통쾌함을 느꼈다.
그럼 왜 알리인가? 그것은 알리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우선 알리는 영리하다. ‘한방’만 믿고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알리는 64년 ‘살인펀치’ 소니 리스톤과의 헤비급타이틀 첫 도전에 앞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고 했다.
힘으로 상징되는 복싱을 ‘테크닉스포츠’로 승화시킨 것이다.
알리는 ‘스포츠맨은 생각이 없다’는 선입견을 깼다. 흑백차별에 항거, 60년 로마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집어던졌고 67년엔 월남전 징집을 거부하며 타이틀을 반납했다.
최근엔 파킨슨병과 싸우는 강인함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끊임없는 자선활동을 벌여 ‘불굴의 도전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스포츠는 일탈행동〓보통사람은 마음은 있지만 알리처럼 행동은 못한다.
이호근박사(스포츠철학)는 “우리는 혹시 돌아올지 모르는 불이익을 겁내 행동하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알리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동할 줄 알았다”고 말한다.
‘알리의 행동’에 우리는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권태와 힘겨움을 잊었다. 우리는 ‘안전선’을 넘지 못했지만 그는 ‘모험’을 감행했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