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본 20세기 스포츠 下]원초적 불평등

  • 입력 1999년 12월 28일 19시 48분


쿠베르탱남작의 제창으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근대올림픽. ‘승부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모토는 세계가 한곳에 모여 화합을 이루는 ‘평등의 장’을 뜻했다.

과연 올림픽은 평등에 기여했나.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올림픽은 이념 인종 민족 문제가 전면에 드러난 모순 덩어리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올림픽〓이동연교수(한려대)는 “1871년 끝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한 조국 프랑스의 재건을 위해 쿠베르탱이 올림픽을 재건했다”고 주장.

민족 단위가 하나의 국가로 발전하던 19세기말∼20세기초에 올림픽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었다. 그래서 올림픽은 제국주의로부터 독립된 국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기에 너무나 좋은 자리였다.

올림픽은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사회주의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각종 대결로 치달았다. 최근에는 올림픽이 상업성을 띠며 돈없는 나라는 대회 유치에도 뛰어들지 못하는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16강 꿈〓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가 열린 월드컵. 지금껏 남미와 유럽이 8번씩 정상에 올랐다. 불공평한 ‘그들만의 대회’에 왜 전 세계인은 열광할까?

그래서 한국민의 너무나 ‘소박한’ 꿈,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는 축구강국에 기본적으로 ‘한수 접히는’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평등한가?〓스포츠는 엄격한 룰의 지배를 받아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농구엔 리바운드가 있어 튀어나온 볼은 ‘누구나’ 잡을 수 있다. 그러나 2m35의 이명훈과 싸워 1m80의 조성원이 리바운드를 잡을 수 있을까. 평등해지기 위해 이명훈의 팔을 잡았다면 조성원에겐 반칙이 주어진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룰 자체는 평등하다. 다만 룰을 이행하는 행위 자체가 불평등할 뿐이다. 그래서 스포츠에서 평등한 건 ‘0―0’에서 시작하는 것뿐이다.

▽독립군 박찬호!〓왜 우리는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승리할때 열광하는가. 박찬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을 던지고 있는데…. 이호근박사(스포츠철학)는 “전근대적 사고로 근대적 스포츠를 재단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곧 신체구조상 시속 145㎞의 속구만 들어와도 우리 타자는 배팅포인트를 맞추는 데 애를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 ‘불세출의 영웅’ 박찬호가 던진 155㎞의 광속구를 거구의 미국타자들이 헛스윙하는 것을 본다. 박찬호가 마치 ‘람보’처럼 ‘타고난 불평등’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박찬호가 마치 일제 치하의 ‘독립군’인 것처럼….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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