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해지기가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노라면 그가 죽음을 선택한 순간까지 처절하게 외쳐댔을 이 말을 절감하게 된다.
닳아 뭉툭해진 붓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 위에 짧게 짧게 툭툭 내던지듯 찍어 그린 점묘법의 후기작품들. ‘그림만이 진실을 말한다’며 가장 단순한 선으로 열정을 표현하려 했던 반 고흐. 그러나 그의 ‘진실’을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데 실망해 1890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나이 서른일곱.
그곳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40㎞가량 떨어진 오베르쉬르우아즈. 센강 상류인 우아즈강가의 한적한 마을이다. 고흐가 이곳에 머문 기간은 두 달 남짓. 그러나 작품활동 기간이 10년에 불과한 천재 요절 작가에게 두 달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파리 서북쪽으로 향한 A15번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40㎞쯤 지나 이 마을로 향하는 출구가 나온다. 우아즈강을 오르편에 끼고 강과 함께 달리는 작은 도로로 4㎞쯤 달렸을까, ‘오텔드빌’이라는 자그마한 호텔이 보인다. 고흐가 살던 하숙집 ‘라보 인’은 이 호텔과 마주한 3층주택이다.
지금은 ‘반 고흐의 집’이라는 고흐기념관으로 바뀐 이 집. 1층에는 ‘라 살라망제 쉐 라보’ 식당, 2층에는 기념품상점, 3층에는 슬라이드쇼룸과 고흐가 거주하던 방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3층 고흐 방부터 찾았다. 나무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한 평 크기의 다락방. 마룻바닥과 천장을 뚫어 만든 자그마한 창문 하나, 그리고 벽속에 수납공간을 둔 3단벽장 하나뿐인 초라한 방이었다.
방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벽 한쪽에는 한 장의 편지가 붙어 있었다. ‘언젠가 나도 카페에서 내 전시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고흐가 경제적으로 돌봐주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던 고흐의 꿈은 이렇듯 소박했다. 그러나 그 꿈은 그가 숨진 후에야 이뤄졌다. 그리고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의 그림은 20세기를 장식한 표현주의의 꽃을 피우게 했다.
박물관 직원의 설명에 따르면 이 하숙집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온종일 동네와 주변의 들로 나가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오베르교회’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모두 당시 작품. 정신병원을 나와 파리의 소음을 피해 찾아 온 이곳이 고흐에게는 안정감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집을 나와 뒷동산에 오르면 그림속의 밀밭이 그대로 펼쳐진다. 동네 뒤편에 있는 오베르교회도 그림 속 모습 그대로다. 고흐가 권총자살을 결행한 것은 1890년 7월27일. 이틀 후 그는 영원한 잠에 들었다. 6개월 후 만성신부전증으로 숨진 동생 테오와 함께 밀밭가 공동묘지에 묻혔다. 비석 외에는 특별한 표지도 없이 생전의 그처럼 단순하게….
<오베르쉬르우아즈(프랑스)=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메모…고흐 그립속의 그 풍경 그대로◆
▼반고흐의 집▼
입장권(30프랑)을 사면 ‘패스포트’라는 작은 책자를 준다. 이 안에는 반 고흐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 있다. 반 고흐의 방은 한꺼번에 5명만 입장을 허용, 휴일에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그 옆 방은 고흐와 함께 하숙했던 네덜란드화가 안톤 히르쉬히의 방으로 당시 화가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대로 전시중이다. 사진촬영 금지. 2000년 3월21일까지는 목∼일요일 오후에만 연다. 나머지 기간은 매일. 시간은 오전10시∼오후6시. 식당(La Salle a manger chez Ravoux)은 ‘반 고흐의 집’ 문을 열 때만 운영하는데 개점시간은 정오∼오후11시.
▼오베르쉬르우아즈▼
반 고흐의 집 옆 담을 따라 난 골목길을 오르면 왼편으로 안뜰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보인다. 관광안내소다. 여기서 필요한 정보를 구하고 동네 뒷산으로 오른다. 조그만 숲을 지나면 ‘까마귀 나는 밀밭’의 무대가 된 평원이 보인다. 평원 가운데로 난 흙길을 따라 걸으면 오른편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곳이 나온다. 오베르공동묘지. 담장 아래 고흐형제의 묘가 있다. 묘지를 나와 동네로 내려가다 보면 고흐그림에 등장하는 오베르교회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