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큰발자국 남기고 떠난 스타들]

  • 입력 1999년 12월 29일 19시 58분


“선동렬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뛴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뛰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한국야구 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선동렬(36)이 은퇴한 지 40여일. 그러나 요즘에도 본사에는 “선동렬이 미국 메이저리그로 복귀한다는데 10승은 충분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온다.

‘국보급 투수’로 불린 선동렬의 은퇴를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팬이 적잖을 정도로 그의 퇴장은 99년 국내스포츠계의 최고 뉴스.

해태시절 11년간 6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뒤 96년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해 올시즌 센트럴리그 우승의 견인차로 활약했다. 그의 은퇴가 더욱 빛이 난 것은 물러날줄을 아는 그의 처신 때문.

“정상에 서 있을 때 깨끗하게 물러나고 싶었다”는 그의 은퇴변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줬다.선동렬은 앞으로 1년간 휴식을 취한 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한팀을 골라 지도자 연수를 받을 계획이어서 팬의 바람처럼 그의 복귀는 어려운 상황.

99년에는 선동렬 이외에도 뛰어난 기록과 팬의 뇌리에 진한 기억을 남긴 채 사라진 스포츠의 별들이 많았다.

축구의 김주성(33). 85년 혜성처럼 나타나 ‘갈색야생마’ ‘아시아의 삼손’으로 불리며 86년 멕시코월드컵부터 94년 미국월드컵까지 3회 연속 월드컵 출전의 기록을 남긴 주인공. 그는 선동렬이 은퇴 선언을 한 지 5일뒤인 11월27일 은퇴 경기를 갖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김주성은 가난을 딛고 우뚝 선 스타. 중앙고 시절 간식을 사 먹을 돈이 없어 수돗물을 들이키며 공을 찬 그는 85년 6월 대통령배축구대회에서 4골을 터뜨리며 새별로 떠올랐다.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했던 김주성은 95년 수비수로 변신해 공수를 두루 섭렵하며 명성을 떨쳤다.선수로 활약하는 틈틈이 공부를 해 96년 한양대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주성은 97년부터 경성대 체육학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축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를 따 교수로서 강단에 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3년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최고의 유격수’로 활약해온 유중일(36)과 쌍방울에서 현역 타자 최고령 선수로 활약하다 올해 은퇴한 김광림(38)도 올해를 끝으로 팬에게 ‘아듀’를 고했다.

유중일은 앞으로 삼성팀에서 코치 수업을 받을 예정이며 김광림도 지도자로 나설 계획.

이밖에 93,95,97년 세계선수권대회 3연속 우승을 이룩한 한국태권도의 간판스타 진승태(26)와 남자핸드볼에서 통산 536골로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백상서(30), 아이스하키 동원드림스의 주공격수 김희우(32)가 각각 올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와 개인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권순일·김상수기자〉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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