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먼 산의 풍경도 그렇다. 넉넉한 품새의 산자락이나 그리 급하지 않은 언덕배기. 도시와 달리 여기서는 무엇이든 여유 있어 보여 좋다. 감칠맛 나는 남도가락처럼, 또 단돈 5000원만 내도 맛깔스러운 반찬으로 한 상 그득 담아 내는 인심처럼.》
해남에서도 땅끝은 송지면 송호리에 있다. 여기가 한반도의 최남단이다. 사람들이 ‘땅끝마을’이라 부르는 곳은 송호리의 갈두선착장 동네. 진짜 땅끝은 선착장 동편 사자봉 정상(해발 122m)의 전망대 아래로 거기에는 ‘토말비’(북위 34도 17분 38초)가 세워져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다도해의 100여개 섬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땅끝이라 해 더 갈데가 없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고산 윤선도(1587∼1671년)가 ‘어부사시사’를 지어 부르며 말년을 보낸 보길도가 지척이다. 보길도까지는 뱃길로 한시간 남짓 걸린다. 갈두선착장에서 출발한다(하루 6회).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고산이 ‘어부사시사’에서 읊조린 노젓는 소리는 이제 모터보트의 굉음으로 대체됐다. 그래도 주변 바다는 이 말 속에 담긴 한가로움을 아직도 담고 있다. 뱃길이 난 넙도, 노화도 사이의 바다는 하얗다. 김 파래 톳을 키우느라 띄운 수 많은 흰색 부이 때문이다. 거기서 요즘 김수확이 한창이다.
보길도에는 고산의 유적이 도처에 있다. 그 중 그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세연정(洗然亭)’을 찾았다. 이 정자는 개울을 막아 물을 끌어들여 만든 연못 세연지와 숲을 이룬 동백나무로 에워싸여 있다. 그것이 주변의 풍경과 이루는 조화는 세련미의 극치다. 이 모든 것을 고산이 직접 설계했다 한다. 간밤의 눈과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빨간 꽃을 활짝 피운 동백이 세연정의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차를 몰아 해안도로를 달려 보자. 다도해 바다가 해안을 배경으로 쉼없이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예송리 해변이다. 해송 방풍림(천연기념물)도 그렇지만 파도가 칠 때마다 부딪혀 소리를 내는 ‘갯돌’(자갈)해변은 더더욱 정겹다.
보길도에서 바다에 취하면 큰 일이다. 육지의 일상을 잊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니 돌아갈 배출항시간 만큼은 꼭 머릿속에 챙겨둘 일이다.
▼ 가는 길 ▼
해남∼땅끝(43㎞)은 국도 13호선과 지방도 813호선으로 연결. 승용차로 1시간 소요. 직행버스도 갈두선착장∼해남, 영암 운행 중.
▼ 답사여행 ▼
우리섬여행클럽(02-733-5093)은 29일과 2월 12일에 보길도(무박2일 일정)로 떠난다. 땅끝 일출 후 토말탑 답사∼보길도 세연정 예송리해변산책∼월출산온천욕. 5만9000원.
▼ 가는 길에 들를 곳 ▼
해남 가는 길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영암 땅이다. 월출산(해발 809m·국립공원)과 온천 그리고 남도별미인 세발낙지 요리 ‘명가’ 중 한 곳이 여기 있다.
▽ 월출산=영암 강진 두 군의 접경으로 북쪽(영암군)에서 보면 남성적인 웅장함이, 남쪽(강진군)에서는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인다. 여느 산과 달리 평지에서 불쑥 솟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산 전체가 수석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이 많다. 정상 천황봉에 올라서면 북으로 호남평야, 남으로 강진 해남 땅, 동으로 소백산맥 줄기가, 서로는 영산강과 영암개펄이 보인다. 문의 관동산악연구회 (02-882-3335).
▽ 온천=월출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쉴 수 있는 깔끔한 온천이 월출산온천관광호텔(0693-473-6311)에 있다. 위치는 영암읍내에서 4㎞ 거리인 군서면 해창리. 수질은 약알칼리성의 맥반석 식염천. 대온천탕과 나무욕조의 히노키탕, 레저풀 기능의 유수기류탕, 수중안마장치를 갖춘 매그넘탕이 있다. 모든 객실(60개)에 온천수가 공급된다. 호텔∼영암읍내 셔틀버스 운행.
▽ 세발낙지=목포시와 영암군 등 이 일대 개펄에서 잡히는 발이 가는 낙지. 깊은 뻘 속에서 자라 크지 않은데다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다. 간척사업으로 개펄 일부가 사라지며 그 수가 감소해 미식가를 안타깝게 한다. 영암읍내 맛집 ‘동락식당’(0693-473-2892)은 낙지와 장어전문 음식점. 나무젓가락에 세발낙지를 감아 양념해 구운 ‘낙지구이’(마리당 3000원), 뚝배기에 낙지와 바지락을 넣고 맑게 끓인 ‘연포탕’(1만원), 갈비와 낙지를 함께 넣는 ‘갈낙탕’(1만2000원) 등 다양하다. 창젓(전어) 토하젓(새우) 파래무침 등 남도 특유의 젓갈과 반찬도 푸짐하게 나온다.
<영암〓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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