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용품 키카(KIKA) 성북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임한성씨(42)는 지난달 제주에서 동계훈련을 하고 있는 큰아들 영상(10)에게 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큰아들은 중곡초등학교 축구부원. 아들이 팀 동계훈련에 참가하자 밥은 제대로 먹는지, 또 훈련은 제대로 따라가는지 온통 걱정뿐이었다.
임씨는 그래도 아들을 바라보면 대견함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자신은 비록 도중에 축구 선수의 꿈을 접었지만 아들만큼은 꿈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씨는 동호인 축구계에서 ‘히바우두’로 통하는 골잡이. 1m69, 61kg의 작은 체구이지만 한때 100m를 12초에 주파했던 스피드와 탁월한 순발력으로 그라운드를 휘젓는다.
국민생활체육 성북구 종암축구회에서는 감독겸 선수로 활약하며 경기당 평균 3골을 터뜨리는 폭발력으로 팀을 각종 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적어도 아마추어에서는 맞수가 없는 고수.
그러나 임씨는 축구공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한때 축구선수의 꿈을 펼쳤다 접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화를 처음 신은 그는 한때 유망주로 떠올랐으나 어려운 집안 형편과 부상으로 중도 포기해야 했다.
87년 고향 용인을 떠나 서울에서 식당을 차렸지만 머리 속에는 온통 축구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이해 교통사고를 당해 같은 병실에서 아내 김경희씨(32)를 만났고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인생을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그래.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임씨는 식당을 정리하고 축구용품점을 여는 한편 조기축구회를 찾았다.
또 영상과 윤상 두 아들이 태어나자 가장 먼저 안겨준 선물이 축구공. 두 아들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축구에 남다른 애정과 소질을 보였고 이제는 대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임씨의 가게에는 곳곳에 조그마한 메모장이 붙어 있다. 모두 다 ‘잘하는 선수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로 인정받자. 최고가 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등등 두 아들을 격려하는 내용.
“두 아들이 팀 플레이를 중시하는 축구를 하면서 달라졌어요. 또래에 비해 의젓하고 책임감이 강해요. 또 저와 축구 얘기를 하다보면 온갖 고민을 함께 나누게 돼 부자간의 정이 두터워지죠.” 임씨의 축구 예찬론이다.
임씨는 지난해까지 ‘IMF체제’라는 긴 터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마다 그라운드를 달리며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삶에 지친 사람은 가까운 조기축구회를 찾아 숨이 턱에 차오도록 달려보라고 권한다. 기왕이면 가족과 함께.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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