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머리칼이 날리고 귓불이 간지럽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바람. 그래도 바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뭐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지 않고서는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불법(부처님의 가르침)도 그런가 보다. 금산(錦山)의 보리암(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에서 만난 사람들. 세상사 근심 한가지씩은 짊어지고 이 험한 산의 암자(해발 621m)까지 올랐다. 그러나 모두가 편안한 표정이다. 극락정토가 어디 따로 있다던가. 해탈의 경지가 어디 에베레스트봉처럼 떡하고 버티고 있다던가. 불법을 따르고 자비를 베풀면 모두가 부처고 어데고 정토인데.
봄이 오는 길목을 찾아 나선 끝에 도착한 보리암. 기암의 절벽에 가까스로 터를 잡은 암자 정면으로 호수처럼 잔잔한 남해의 쪽빛바다가 펼쳐진다. 아침 7시. 3대가 정성을 쏟아야 볼 수 있다는 보리암 일출. 불발이다. 그래도 섭섭지는 않다. 어둠속에 가려 있던 보리암 아래 남해도 주변 한려해상공원 바다의 비경 덕이다. 돋는 해와 함께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 초단위로 점입가경이다. 산아래 바닷가 마을 상주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송림에 둘러싸인 고운 모래해변, 점점이 떠있는 승치 삼서 목도 등의 섬. 장쾌한 해돋이를 놓치더라도 아쉽지 않음은 보리암 부처님의 자비로움 덕이 아닐까.
산에 오르다 보면 절구경은 덤이요 절집을 찾아가다 보면 산은 저절로 오르게 된다. 보리암과 금산 역시 예서 벗어나지 않는다. 산아래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3㎞를 오르면 복곡주차장. 다시 제2주차장까지 3.3㎞는 비포장 도로로 셔틀버스(왕복 2000원)가 운행되고 있다. 제2주차장∼보리암은 가파른 산길로 800m. 암자에 올라가 보면 대개가 여인임에 놀란다. 한 두가지 서원을 갖고 영험하다는 보리암 관세음보살을 찾아온 이들이다. 이곳이 낙산사의 홍련암(강원 양양), 강화의 보문암(인천), 그리고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전북 여수)과 더불어 ‘4대 기도처’로 불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금산은 예로부터 삼남에서 손꼽히는 명산. 그 옛날 중국 진시황이 신하 서시에게 선남선녀 500명을 이끌고 가 불로초를 캐오라 했다고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의 조선 창업도 금산에서 기도 후 이뤄졌다 한다. 원효대사로부터 받은 산이름 ‘보광’이 금산으로 바뀐 것도 기도를 들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름에나마 비단(錦)을 두르도록 하자는 태조의 뜻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보리암 앞 절벽 위에는 원효대사가 신라 신문왕 3년(683년)에 세웠다는 삼층석탑이 있는데 여기에는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부처님사리가 모셔졌다는 전설이 있다고 안내판에 씌어 있다. 서시가 금산에 들렀다는 전설은 남해군 이동면 양아리의 한 바위에 새겨진 오래된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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