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정봉두(鄭奉斗·46)이사는 북한 고성(장전)항사무소에 근무중인 금강산관광 실무책임자. 그는 이번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휴가까지 내 ‘남한행’ 배를 탔다.
정이사는 장전항사무소에서 금강산사업을 챙기느라 99년 한 번 결장한 것을 빼면 95년부터 줄곧 대회에 참가해온 동아마라톤의 ‘열성팬’. 이번 대회에 임하는 그의 심정은 여느 해와는 크게 달랐다. 한반도의 중심인 서울 광화문에서부터 시내를 관통해 달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는 ‘금강산대표’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통일 한국’을 그리며 달렸다.
정이사는 타고난 마라토너다. 86년 9시간7분 동안 108km를 단 한차례도 쉬지 않고 달린 대기록을 갖고 있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일본 도쿄 주재원 발령을 받은 84년. 새벽잠이 없어 4.5km를 달린 게 계기가 됐다. 달릴수록 달리고 싶은 충동이 커지고 재미도 붙고 마라톤에 대한 애정이 생겨 90년까지 일본에 머무는 동안 거의 모든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7년 동안 42.195km의 풀코스 마라톤대회에 25차례 참가해 완주했고 87년에는 자신의 최고기록 2시간54분을 돌파하기도 했다.
98년11월 북한에 들어간 뒤에도 마라톤 사랑은 변함 없었다.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사무소에서 부속선 접안부두까지 1.5km거리를 10여 차례 왕복하며 꼬박 15km를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는 북한군 보초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북한 군인들도 그냥 내버려둔단다.
‘기록에 대해 집착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북한에서 새벽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깨달음 때문이다. 기록보다는 한반도의 땅덩어리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느긋하게 달렸다.
결승선을 3시간13분12초에 통과한 그는 “금강산과 장전에서 부지런히 연습했는데 예상보다 많이 늦었다”면서도 여유만만한 모습이었다.
“이제 하루빨리 통일이 돼 남북을 가로질러 달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날이 오면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동아마라톤에 반드시 참가할 겁니다. 만약 내가 죽은 다음이라면 영혼이라도 달릴 겁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에도 그의 눈빛은 피로의 기색도 없이 빛났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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