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정남균, 38km서 스퍼트 줄곧 독주

  • 입력 2000년 3월 19일 20시 14분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19일 오전 10시 2000동아서울국제마라톤 겸 제71회 동아마라톤대회의 출발을 알리는 축포가 광화문 네거리에 힘차게 울려퍼질 때만 해도 무명 정남균(한국체대)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날씨가 변수였다. 습도는 63%로 적당했지만 섭씨 5.5도는 마라톤을 하기엔 약간 쌀쌀한 기온. 우승한 정남균은 “오히려 낮은 기온이 레이스에 큰 도움을 준 것 같다”고 밝혔다.

세계선수권 2연패의 아벨 안톤(스페인) 역시 기온이 낮을 때 제 실력을 발휘하는 스타일. 경기전 안톤은 “훈련할 때는 따뜻하고 경기때는 약간 기온이 낮은 게 좋다”며 날씨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를 맡고 있는 엔리케 파스쿠알코치는 “후반에 스퍼트를 해 우승을 노리는 전략으로 나가겠다”고 했지만 후반 스퍼트 전략이 적중한 것은 안톤이 아니라 정남균이었다.한국체대 김복주지도교수는 “35㎞지점에서 스피드를 내도록 지시했는데 이 작전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 0∼10km ▼

박종우 김용택(이상 영동군청) 한창윤(한양대) 등 국내선수 7명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맡고 선두그룹으로 뛰쳐 나갔다. 안톤과 키프로프 등 엘리트 선수들은 무리를 지으며 2위그룹을 형성.

하지만 초반 30m정도 후방에서 선두를 쫓던 2위그룹은 7.8㎞지점에서 선두그룹을 따라잡아 간격이 없어졌다. 1m76으로 마라토너로서는 장신인 키프로프는 상체를 곧추 세우는 주법으로 자신감넘친 스트라이드를 하며 선두로 나섰다.

▼ 10∼20km ▼

대회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한 스페인의 조셉 마리아 로셀요와 케냐의 제임스 모이벤이 선두그룹을 이끌었다. 안톤은 바람을 맞지 않기 위해 선두그룹 후미에서 페이스 조절을 하며 체력을 비축하는 모습.그는 레이스도중 모로코의 카멜 지아니 후아시시와 대화를 나누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국내 1위 후보중 한명이었던 장기식(한전)은 14㎞지점인 잠실대교 위에서 오른쪽 다리에 근육경련이 일어나 절뚝거리며 뒤로 처지고 말았다. 키프로프는 레이스도중 김병렬(창원시청)의 발에 걸리자 두 팔을 휘저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두권에 묻혀 뛰던 정남균은 19㎞지점에서 안톤, 키프로프, 모이벤, 로셀요과 함께 완전한 1위그룹을 형성하기 시작. 이 지점부터 김이용, 가르시아(스페인), 후아시시, 도요카즈(일본) 등은 40여m 뒤처지며 선두와 간격이 벌어졌다.

▼ 20∼30km ▼

안톤이 페이스메이커 로셀요에게 뒤로 빠지라고 손짓하자 로셀요가 22.5㎞지점에서 임무를 다하고 레이스를 마쳤다. 또 한명의 페이스메이커인 모이벤도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25㎞지점을 1시간16분28초로 통과했을 때 정남균은 가르시아와 함께 나란히 선두로 나서며 동아국제마라톤 우승의 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시작. 전문가들은 무명인 정남균이 오버페이스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했지만 정남균은 시종 자신감 넘친 레이스로 ‘깜짝쇼’를 예고했다. 안톤과 키프로프는 기록보다는 순위에 신경을 쓰는 듯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선두 2명 뒤에서 페이스를 유지.

▼ 30∼35km ▼

정남균과 가르시아의 치열한 레이스가 펼쳐졌다. 간발의 차로 앞선 가르시아는 힐끔힐끔 얼굴을 돌리며 뒤에서 바짝 붙은 정남균이 부담스러운 눈치. 정남균은 가르시아의 바로 뒤에서 바람을 막아가며 얼굴표정의 변화 없이 눈을 내리깔고 침착하게 뛰었다.

이때만 해도 안톤과 키프로프, 후아시시 등 2위권 선수들은 선두와 150여m 차이를 두고 뛰었지만 선두와의 간격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 35∼골인 ▼

38.1㎞부터 정남균의 독주가 시작됐다.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정남균은 막판 스퍼트로 뛰쳐 나갔고 다리가 약간씩 풀린 가르시아는 앞서 가는 정남균을 보고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금 힘에 부친 듯 정남균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두 다리는 중반 페이스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싱싱해 보였다. 41㎞지점에서 50여m 뒤진채 선두를 따라가던 가르시아의 다리가 한번 휘청댔다. 그의 얼굴엔 이미 선두를 따라잡기엔 힘들다는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잠실주경기장 트랙에 들어서며 한번 뒤를 쳐다본 정남균은 가르시아와의 거리가 안정권임을 확인하자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우승 테이프를 커팅한뒤 김복주지도교수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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