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의 강추위와 싸우며 30kg가 넘는 짐이 실린 썰매를 끌고 스키로 하루 20km씩 산악행군 을 시작한지 사흘째. 한치 앞을 가늠키 힘든 눈보라,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벌판을 헤치며 이들은 정상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었다.
잠시 뒤 드디어 해냈다!(We finally did it!) 정상정복을 알리는 프랑스대표 리처드(24)의 환호가 터지자 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밭을 뒹굴었다.
발 아래 은빛 눈천지를 바라보며 가쁜 숨을 고르던 최군은 나직한 목소리로 결의를 다졌다. 이제 북극으로 가는거야.
지구촌 밀레니엄 행사의 하나인 극에서 극까지 2000 (POLE TO POLE 2000)에 한국대표로 참가, 캐나다 현지에서 각국 청소년들과 한달여 합숙훈련을 마친 최군의 얼굴은 이미 짙은 구리빛이었다. 그는 31일 대장정에 오르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구종단에 성공하겠다 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번 탐험에 최종 선발된 한국과 미국(2명) 일본 캐나다 프랑스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7개국 8명의 남녀 청소년들은 1일 북극점을 출발,9개월간의 밀레니엄 대장정 에 나선다.
이들 일행은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밀림 등 중남미대륙을 관통한 뒤 내년 1월1일 남극 아문센기지에 도착하기까지 총 2만4000km 구간을 도보 스키 싸이클 카약으로 이동한다.
대원들의 연령은 19∼26세.대학생 스키강사 컨설턴트 등 직업도 다양하다.전 대원중 막내 인 최군은 10여개국의 도착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홍보행사의 기획을 맡았다.
변화를 위한 도전 (Challenge to change)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대장정에 오르는 이들은 여정도중 세계 각국의 인권 환경 아동관련 민간단체가 벌이는 각종 이벤트에 참가할 계획. 당초 이 행사를 기획하고 팀을 인솔할 예정이던 영국인 탐험가 마틴 윌리엄스(51)는 한달 전 발목부상을 입어 동료탐험가인 로리 덱스터(57)가 대원들을 이끌게 된다.
2월말 밴쿠버에서 북동쪽으로 650km가량 떨어진 100마일의 집 이라는 소도시에 훈련캠프를 차린 대원들은 하이킹 싸이클 크로스컨트리 카약 등의 체력강화 훈련을 비롯, 컴퓨터 위성통신장비 이용법, 비상처치법 등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았다.
이번 여정 내내 대원들은 최악의 자연환경을 견뎌내야 한다. 특히 영하 40도 이하의 혹한 속에 하루 8시간씩 썰매를 끌고 스키로 이동해야 하는 40일간의 북극탐험 은 최대고비가 될 전망. 대원들은 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 길을 찾는가 하면 눈보라치는 벌판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야 한다. 각종 맹수와 말라리아 등 풍토병이 도사린 아마존 밀림지역의 카약 종단도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
최군은 환경 기아 전쟁 등 인류가 직면한 휴먼 이슈 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실천을 이끌어내는 것이 행사의 진정한 의의 라며 이를 위해 도착지마다 각종 인권 사회 환경단체와 연계, 다양한 이벤트를 벌일 예정 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정이 내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지구 반바퀴를 도는 험난한 도전이지만 정신력으로 해내고야말 겁니다. 최군의 마음은 이미 남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9개월 여정의 진행상황과 최군이 그때그때 보내는 메시지는 최군의 개인 인터넷사이트(www.pole2pole.net)와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기획자 마틴 윌리엄스 "崔군 책임감 투철 탐험성공 확신"▼
"부상 때문에 직접 팀을 인솔하지 못해 아쉽지만 최군을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성공적으로 여정을 마칠 것을 확신합니다."
범세계적으로 구성된 청소년 탐험대의 극에서 극까지 2000 행사를 기획한 세계적인 탐험가 마틴 윌리엄스(53·영국).
남극(84년), 에베레스트(91년), 북극(93년) 등을 모두 밟은 그는 동아일보 독자를 비롯해 한국국민들이 이들의 탐험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깊은 관심과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달라 고 말했다. 다음은 31일 오전 현지 훈련캠프에서 만난 그와의 일문일답.
-최초 출발지인 북극점까지는 어떻게 들어가는가.
"31일 오전 캐나다 애드먼턴 공항에서 경비행기편으로 북극점에서 600km 떨어진 레졸루트 섬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다시 3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북극점으로 들어간다."
-그 동안 훈련의 중점은.
"혹독한 추위, 찌는듯한 무더위 등 최악의 조건 속에서 매일 수십여km 강행군을 하기 위해선 강한 체력이 필수적이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각종 응급조치법과 장비사용법도 필요하다. 도착지마다 각종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기획력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최군의 훈련성적은.
"나이가 어려 다소 걱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우 였음을 깨달았다. 최군은 모든 훈련에서 투철한 책임감으로 앞장서서 대원들을 이끌었다. 탐험가의 자질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본인은 어떤지 모르겠다."
-탐험도중 가장 걱정되는 점은.
"40여일이 소요될 북극여정이다. 영하 40도 이하의 강추위, 곳곳에 도사린 천길 얼음계곡 등 최악의 자연환경에 맞닥뜨려 인내의 한계를 시험받을 것이다. 특히 북극곰의 위협에 대비해 2정의 샷건도 준비했다."
-부상 등 비상사태 시의 대비책은.
"대원들은 여정내내 첨단 위성통신장비를 이용, 밴쿠버의 본부와 연락을 취하게 된다. 구조요청이 들어올 경우 각 목적지에 대기중인 의료팀이 즉시 출동할 것이다."
-남극 도착 이후의 일정은.
"여정에서 만나는 10여개국 시민과 청소년들로부터 받은 새 천년의 메시지를 모아 새 밀레니엄 인류선언문 을 발표한다. 이번 탐험의 근본취지인 인류애의 작은 실천 을 구체화하는 이벤트다."
-이번 탐험 이후 또다른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인가.
"남극을 출발해 호주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을 가로질러 아프리카에 이르는 지구횡단 을 계획중이다. 내년 1월초 출발을 목표로 일정을 짜고 있다. 역시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로 탐험대가 꾸려질 것이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