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렬의 은퇴경기 때 오랜만에 만난 주니치 드래건스의 호시노 감독은 이종범에 대해 "당신이 감독이라면 0.23대를 치는 외국인 선수를 1군에 그것도 1, 2번 타순에 기용할 수 있겠느냐? 올해 1군에 계속 머물긴 좀 어렵지 않겠느냐"며 완곡한 표현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 전날 2군으로 떨어진 이종범은 대선배 선동렬의 은퇴경기도 함께하지 못했다.
때마침 호주 태생의 메이저리그 4번타자 출신인 데이비드 닐슨이 연습타격에서 홈런을 펑펑 때려내는 걸 보면서 필자 역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채 화제를 돌려야 했다. 물론 호시노 감독도 한국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곤혹스럽게 몇 차례나 밝혔고….
그로부터 40여일 후인 4월22일 닐슨의 부진으로 1군에 올라온 이종범이 승승장구하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5번째 출전 경기부턴 3번타자로 승격했고 4월30일 경기에선 3타수 3안타로 타율을 0.37대까지 끌어올렸다.
지난해엔 필자도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해 '뭐하러 일본까지 가서 저 고생을 하고 우리 야구 자존심까지 상하게 하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한 후 올해 2군에서 처음으로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는 야구천재가 정말 진정한 프로답게 한번 찾아온 기회를 움켜잡는 장면은 마치 불난 건물 옥상에서 헬리콥터의 구명 밧줄을 움켜잡는 그것과 흡사하다. 피눈물 같은 땀을 흘린 자만이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보여준 드라마가 아닐까 한다.(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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