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가 열리는 파리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은 해마다 '톱스타의 무덤'으로 악명을 떨쳐왔다. 올해 역시 안드레 아가시와 피트 샘프러스, 린제이 데이븐포트(이상 미국) 등이 모두 초반 탈락했다. 또 4대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게 이 대회에서만 무관에 그친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는 결승 문턱에서 주저앉으며 불운을 곱씹었다.
붉은 클레이 코트를 쳐다보기조차 싫어하게 된 톱랭커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구스타보 쿠에르텐(24)은 파리에만 오면 펄펄 날았다.
97년 이 대회에서 당시 세계 66위의 신예로 쟁쟁한 거물들을 차례로 꺾고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다. 역대 가장 낮은 랭킹으로 챔피언에 등극하며 '깜짝 스타'로 떠오른 것.
그 쿠에르텐이 12일 벌어진 남자단식 결승에서 '바이킹의 후예' 마그누스 노르만(스웨덴)과 맞붙었다. '이방인들의 잔치'였지만 1만6000여 파리지엔은 관중석을 가득 메웠다. 화려한 의상에다 곱상한 외모로 인기를 몰고 다니는 쿠에르텐을 보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애칭인 '구가'를 연호하는 팬들의 응원에 더욱 힘을 낸 쿠에르텐. 3시간44분간의 접전 끝에 3-1(6-2, 6-3, 2-6, 7-6)로 승리해 3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상금은 60만달러.
2차례 메이저 우승을 모두 이 대회에서 거둔 쿠에르텐은 “프랑스오픈은 내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무대이며 다시 우승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생애 첫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을 노린 노르만은 “같은 유럽 출신을 마다하고 남미에서 건너온 쿠에르텐이 일방적인 응원을 받은 것이 실망스럽다”고 낙담했다. 이번 우승으로 쿠에르텐은 노르만을 제치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게 됐다.
<김종석기자·파리외신종합>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