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도 승패도 없는 그 길을 한일 양국 시민들이 ‘월드컵 공동개최 성공’을 기원하며 함께 걸었다.
24, 25일 부산과 울산에서 각각 열린 ‘2002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기념 한일 우정걷기대회’(동아일보사 아사히신문사 한국체육진흥회 일본걷기협회 공동주최).
대부분 가족 단위로 참가한 양국 시민 4000여명은 이 대회가 갈등과 긴장으로 이어져오던 한일 양국 관계에 ‘우정의 디딤돌’을 놓았다고 입을 모았다.
신문을 보고 아들과 함께 대회에 참가한 주부 박영단씨(37·울산 동구 전하1동)는 “월드컵공동개최 파트너인 일본과 이런 대회를 계기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년 전 펜팔로 사귄 부산 친구를 볼 겸 대회에 참가했다는 시마 마사오(64·일본 사이타마현 오미야시)는 “한일 관계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활짝 웃었다.
25일 울산대회는 아이를 무동 태운 젊은 아버지, 유모차를 끌고 모처럼 건강 나들이에 나선 어머니, 목발을 짚은 대학생 등 다채로운 참가자들이 제일중학교를 출발해 태화강변을 따라 1km에 이르는 긴 행렬을 이뤘다. 일부 한국 참가자들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현장을 돌아오는 10km 구간 내내 일본 참가자들과 보조를 맞춰 걸으며 즐거운 대화로 손님맞이에 정성을 다했다.
앞서 열린 24일 부산대회는 출발 전 간간이 비가 내려 참가자들의 애를 태웠으나 막상 출발 때부터는 날씨가 활짝 개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참가자들은 코스 도중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부산 월드컵경기장 건설현장을 방문, 현장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내 고장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틀에 걸친 대회가 끝난 후 양국 참가자들은 9월3일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6차 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작별을 했다.
<부산·울산〓배극인·양종구기자>bae2150@donga.com
▼'죽순'자매 우정 대나무같이 쑥쑥▼
‘걷기대회로 맺은 죽순자매의 우정.’
24일 2002월드컵축구대회 한일공동개최 기념 ‘한일우정걷기대회’ 부산대회가 열린 사직운동장. 대회시작 전 ‘죽순 언니’와 ‘죽순 동생’ 두 여인이 서로 얼싸안으며 반가워하는 모습에 참가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죽순씨(70)와 권죽순씨(40). 이름이 죽순(竹筍)으로 한자까지 똑같다. 올 5월 6,7일 열린 일본 우라와∼가시마 걷기대회에서 처음 만났지만 이름 때문에 가까워져 30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걷기 자매’가 됐다. 이제 대회 때마다 붙어다니며 친자매 같이 지내고 있다.
지난해 적십자간호전문대 체육과 교수직을 떠난 이씨는 걷기의 ‘베테랑’. 일본에서 열리는 걷기대회에 93년부터 참가하고 있으며 96년에는 네덜란드 걷기대회에도 다녀왔다.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어 지금까지 병원신세를 진 적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미대사관에 근무하는 권씨는 우라와대회 때 처음 참가한 초보. 걷기대회를 통해 얻은 게 많다. 일본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지울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의미있었다. 그동안 일제강점과 정치인들의 망언 등으로 일본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었는데 직접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난 뒤 확 바뀌었다. 부러울 정도로 검소하고 정이 많고 성실했다. 걷기대회를 통해 일본 친구도 사귀었다.
한국과 일본의 걷기대회에 모두 참가한 ‘죽순자매’는 “일본은 2002년 월드컵을 성실히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말만 앞세울 뿐 제대로 실천하는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부터라도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월드컵을 준비해야 낭패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산〓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