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막된 윔블던테니스대회는 4대 메이저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잔디코트에서 열린다.
시드도 특이하게 세계 랭킹과 상관없이 잔디코트 승률을 따져 배정한다. 이 바람에 세계 16위 안에 드는 스페인 출신 톱스타 3명은 시드를 못받았고 시정을 요구하다 대회참가를 보이콧까지 했다. 123년 역사의 윔블던은 그래서 잔디코트 전문가들이 득세했던 게 사실. 잔디코트 표면에서는 구속이 빨라 서브앤드발리 플레이어들에게 유리한 반면 안정된 스트로크 위주의 베이스라이너는 힘을 잃는다. 게다가 빗물에 젖어있기라도 하면 넘어지기 일쑤.
이번 대회에서도 잔디 때문에 울고 웃는 스타들이 쏟아지고 있다. 호주의 신예 레이튼 휴이트(19)도 바로 그랬다. 7번 시드 휴이트는 윔블던 전초전인 퀸스클럽대회 결승에서 잔디코트의 1인자 피트 샘프러스(미국)를 2-0으로 완파하고 우승, 이 대회 최대 복병으로 꼽혔다. 하지만 28일 런던 근교의 올잉글랜드코트에서 열린 남자단식 2회전에서 세계 49위에 불과한 장 미셸 갬빌(23·미국)에게 0-3(3-6, 2-6, 5-7)으로 완패, 일찌감치 가방을 쌌다.
올해 피플지가 선정한 50대 미남에 선정된 갬빌은 기량보다도 외모로 유명한 선수로 휴이트 보다 두어수 아래로 평가된 게 사실. 그러나 휴이트는 미끄러운 코트에서 힘 한번 제대로 못쓴채 대회 초반 최대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경기를 마친 뒤 휴이트는 “코트가 너무 미끄러워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휴이트에게는 여자친구인 킴 클리스터(벨기에)가 98년 이 대회 준우승자로 7번 시드인 타탈리 토지아(프랑스)를 꺾는 파란을 일으킨 게 위안거리였다.
또 고전 끝에 행운의 기권승으로 1회전을 통과한 패트릭 래프터(호주) 역시 “코트에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엄살을 피웠다. 이처럼 여기저기에서 바나나 껍질을 밟은 것처럼 중심을 잃는 장면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여자단식 챔피언이자 자신의 복식 파트너인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맞붙은 코리나 마우리나(미국)는 경기 도중 미끄러져 왼쪽 어깨와 발꿈치를 다쳐 아예 기권했다. 데이븐포트와 복식 2연패를 노리는 마우리나는 부상 정도가 심해 남은 게임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
편 안드레 아가시(미국), 올 프랑스오픈 남녀우승자인 쿠에르텐(브라질)과 피에르스(프랑스) 등은 신발에 체인이라도 감았는지 잔디의 심술을 피해 무난히 1회전을 통과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