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소리를 본다’고 했다. 관음(觀音)이다. 그 소리는 세간 중생의 온갖 바람과 욕심을 담았을 터. 세음(世音)이다. 관세음(觀世音). 바다 한가운데 불쑥 솟은 보타낙가산(補陀洛伽山·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에서 관세음하는 보살님. 그 귀는 얼마나 커야 세상 중생의 모든 소리를 다 담을까. 작은 내 귀로는 지금,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소리, 하얀 포말이 사그라지는 소음밖에는 들리지 않는데….
그런 청음(聽音)의 인간이 관음의 보살을 찾는다. 고통의 바다에서 헤어나려 함이다. 그 넓은 귀로 내 소원을 들어주십사, 관세음의 보살을 찾는다. 세상 도처의 ‘소리를 본다’는 보살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관세음할 터. 어찌 남보다 먼저 제 바람을 이루려 보살 앞에 다가가는가. 그 욕심에 보살이 귀 막지 않은 게 다행이다. 손에 쥐고 눈으로 보아야 비로소 안심하고 믿는 속세의 인간들. 관세음도 못미더워 청(聽)세음까지 청하니….나무관세음보살.
참으로 오랜만이다.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해맞이 한 것이. 강릉 정동진역 해변이 드라마 한방으로 동해일출 1번지로 뜬 지 벌써 5년. 주말이면 해맞이열차와 무박일출관광버스가 쏟아내는 해맞이 관광객으로 조용했던 해변은 여명도 오기전부터 북새통을 이룬다. 역 부근은 조각공원에 대형전망대식당, 민박집으로 번화가로 변했다. 그러나 세상이치란 것은 어디서나 같다. 과(過)하면 쇠(衰)하는 것. 야단에 법석풍의 소란한 해맞이는 애초부터 우리가 기대하는 해돋이는 아니다. 그래서 다시 찾은 게 양양의 낙산사다.
낙산해수욕장 고운 모래밭에 발자국 남기며 북쪽 오봉산을 향해 오른다. 울창한 낙락장송 숲속에서 솔가지 사이로 들리는 파도 깨지는 소리. 신라고승 의상대사가 좌선한 자리에 만해 한용운이 세우고(1925년), 이후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아 일출명소가 된 의상대에 올라 여명에 곱게 물든 바다와 하늘을 본다. 수평선을 박차고 불쑥 솟아오른 불덩이에 놀란 듯 새 한 마리가 푸드득 숲속으로 날아간다.
수십길 낭떠러지 아래 바위해안에서는 여명 속에서 거룻배 타고 미역따는 어민의 손놀림이 바쁘다. 그 출렁거림은 낭떠러지 끝에 숨듯 자리잡은 낙산사 홍련암의 마루구멍을 통해 보고 듣는다. 발걸음을 옮겨 신선봉 기슭을 오르면 동해를 향해 선 거대한 해수관음보살입상을 만난다. 낙산사는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국내 3대 관음도량으로 불리는 관음신앙의 성지. 대부분 관광객은 예서 발길 돌려 해변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그러나 진짜 구경은 이제부터. 조급한 마음은 접어서 동해에 던지고 느긋한 마음으로 지척의 천년고찰 낙산사로 아침산책을 떠나보자.
낙산사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원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현실고통을 해결해주는 관음보살이 정주하는 곳이라 하지 않는가. 혹여 의상대사처럼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
신라의 의상법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자마자 관음보살의 진신이 이 바닷가 굴안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세운 최초의 화엄도량. 홍련암은그가 화엄을 깨치고 관음을 친견한 기도처며 의상대는 그가 자주 입정에 들던 좌선처다. 당우가 들어선 산의 원이름은 오봉산이나 의상대사의 관음친견이후 낙산(낙가산)으로 바뀌었다.
큰길에서 접어드는 일주문을 지나면 마치 산성에 있는 것 같은 홍예문이 나온다. 이 성벽은 조선 태조가절안에 보관된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지키기 위해 지은 것. 홍예문은 세조가 강원도 26개 고을에서 하나씩 가져온 돌로 쌓았는 데 이때 삼층이었던 석탑(보물 제499호·원통보전 앞)을 칠층으로 올리면서 수정염주와 여의주를 탑속에 안치했다고 전해진다. 원통보전은 꿈을 통해 애욕의 무상함을 깨우친 설화의 현장인데 그 주변을 둘러싼
담장이 명물이다. 이 담장은 보러 가기 전 경복궁 자경전의 담장을 먼저 보기를 권한다. 십장생이 화려하게 그려진 자경전 담장과 정반대로 이 것은 암키와와 흙을 교대로 켜켜이 쌓고 그 중간에 동그란 화강암을 박아 넣은 소박미가 돋보인다. 세월의 더께가 그대로 느껴지는 역사의 담장이다. 사천왕상 낙산사감로수(약수터) 범종각에이어 보타전에 이르면 관음의 화신인 듯 생생한
느낌을 주는 1500개의 목각 관음상을 만난다.
▼맛집▼
낙산사 전복죽은 맛을 보니 그 명성이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듯했다. 비록 40년전 식당자리는 지키지 못했어도.
“의상대 절벽 아래 파도 들이치는 해안가였는데.
60년대초 어려운 시절이라 판잣집에 간판도 없이 군에서 지정해준 번호(1∼10호)로만 불리던 허름한 식당이었지요. 실향민인 어머니는 주워온 드럼통에 무쇠솥 걸고 군불 지펴 앞바다에서 건져온 전복으로 죽을 끓였습니다. 80년대 해안정비사업으로 이곳(낙산해수욕장 해변가)으로 옮아왔지요.”
억센 함경도 억양의 ‘낙산7호식당횟집’주인 최종락씨(55)의 말이다. 그는 ‘7호’라는 이름을 강조하며 “당시 판잣집 전복죽식당 전통을 잇는 유일한 식당인만큼 전복죽 맛도 옛날 그대로”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씨는 “40년 가까이 전복죽을 끓여낸 어머니 손맛을 여동생이 그대로 이어 받았다”며 “전복죽만큼은 여동생이 직접 끓여 낸다”고 말했다.
동해 전복의 현시가는 한 관(3.75㎏)에 60만원선. 이 식당의 전복죽은 한 그릇에 만원이다. 의상대 해맞이후 낙산사 둘러 보고 해수탕에서 미네랄 풍부한 바닷물로 목욕 한 다음 전복죽 한 그릇을 먹으면 세상 부러운게 없다. 그 다음은 신나는 바다여행.해변가의 낙산7호식당횟집에는 민박객실도 있고
오징어 광어 등 횟감도 많다. 0396-672-2270
▼명소▼
의상대 가는 길 해안가 언덕 위에 있는 전망 좋은 낙산비치호텔의 명물은 ‘해수사우나’.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다.
프랑스 의학자들이 2000년전부터 내려온 지중해 바닷물을 이용한 질병치료방식을 연구, 개발한 탈라소세라피(Thalasso Theraphy·해수요법)를 이용한 건강욕탕이다.
“강한 태양열을 머금은 바닷물, 모래해변보다는 바위해안의 바닷물에 인체에 유용한 미네랄이 더 풍부하다는 프랑스해수요법연구회의 연구결과에 비춰 볼 때 청정도 높고 염도가 적당(4%)한 동해안 바닷물이 해수요법에 알맞습니다.”
이호텔 오위출전무의 말. 그는 “의상대 아래 바위해안에서 퍼올린 깨끗한 바닷물을 여과 살균(오존이용)한 뒤 피부를 통해 미네랄이 가장 효과적으로 흡수되는 섭씨 42도로 데워 공급하고 있다”면서 “교통사고로 후유증을 앓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경우에 특히 효과가 뛰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해수요법 효과는 해수탕에12분간은 몸을 담가야 극대화된다고. 남녀탕 개장
오전5시반∼오후8시. 5000원. 0396-672-4000
<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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