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떨어지던 19일 서울 양재 실내테니스코트. 민관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82)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친선 복식경기에서 40대 초반의 동호인 팀을 꺾은 노옹의 일성이었다. 82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았다. 왼손에 쥔 라켓에는 힘이 넘쳐 나왔다. 드라이브를 걸어 치는 스트로크, 발리, 서브 뭐하나 여느 선수 못지 않게 능수 능란했다. 동료의 멋진 플레이에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연신 파이팅을 외쳤다. 마치 흐르는 세월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보였다.
민 명예회장은 ‘영원한 테니스인’으로 통한다. 처음 테니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5년 미국대사관 직원들과의 체육대회. 경성 제일고보 시절 탁구 국가대표로 뛰었던 민 명예회장은 예의를 강조하는 테니스의 경기 규칙과 흰 복장 등에 매료된 것. 그로부터 40년 넘도록 바쁜 공직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라켓과 함께 했다.
민 명예회장의 테니스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을 뛰어넘는다. 국내외 동호인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올 5월에는 일본 후쿠오카 사가에서 열린 제23회 윔블던 더블스 아이오와컵대회 최고령부 복식에서 우승했다.
“테니스는 전혀 과격하지 않으며 평생 스포츠입니다.” 민 명예회장은 요즘도 1주일에 두세 차례 코트에서 3세트 정도 복식게임을 즐기고 있다. 테니스는 짧은 시간에도 충분한 운동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민 명예회장의 얘기. 국내외 출장을 갈 때 가방 안에는 언제나 테니스화, 라켓, 운동복부터 먼저 챙긴다. 테니스와 함께 체력을 지키기 위해 아침마다 스트레칭을 하고 헬스클럽을 찾아 하루 5㎞ 정도를 걸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개성이 고향으로 고교 시절 경의선을 타고 서울까지 통학했다는 민 명예회장. “생전에 개성에 가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 테니스도 칠 수 있었으면….” 최근 경의선 복원 소식은 민 명예회장에게 이래저래 각별할 수밖에 없다.
<김종석기자>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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