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에서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평행봉 금메달을 따내 국내체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후 이주형은 ‘그저 그런 선수’로 빛을 보지 못했다. 유망주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체조계도 반성할 일이었고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이주형에게도 아쉬움은 많았다.
하지만 ‘대기만성’이라고 했던가.타고난 성실성으로 인내한 이주형.그는 이제 아시아정상이 아닌 세계정상에 우뚝 올라서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톈진 세계선수권대회 평행봉 우승으로 91년 유옥렬(뜀틀)에 이어 8년만에 세계 1인자로 등극했고 11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99DTB 국제체조대회마저 제패해 위치를 확고히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그는 한국체조계의 숙원을 풀어줄 ‘희망봉’이다.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여홍철(뜀뜰)이 은메달을 따낸 게 역대 체조 최고 성적.
이미 그가 평행봉에서 구사하는 기술수준은 아무도 따라올 선수가 없다. 그의 무기는 ‘모리스에 파이크드’.
최고급 난이도인 ‘SE(슈퍼 E난도)’에 해당하는 기술로 뒤로 두바퀴 공중회전후 무릎을 완전히 편 상태로 어깨에 평행봉을 걸치는 동작이다.
게다가 ‘히리(물구나무 서서 뒤로 넘어 한손 되짚기·C난도)’ 등 고급기술을 잇따라 연결시키는 동작이 뛰어나 보너스점수를 획득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착지 등에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그의 기술로 봤을 때 금메달 전망은 ‘아주 맑음’으로 분류된다.
국가대표팀 이영택감독은 “하체가 짧은 동양인체질이면서도 훈련을 통해 스케일이 큰 동작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유럽스타일의 연기를 소화해낸다.그가 연기를 할때면 유럽선수들도 감탄을 한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이주형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점.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으며 그 흔한 여자친구도 없다. 오직 운동때문이다.동료들도 “인내심 강하고 성실한 ‘연습벌레’”라고 그를 평가한다.
그렇다고 개성조차 없는 건 아니다.이주형의 왼쪽 귀에는 조그만 귀고리가 하나 걸려 있다. “남들에게 똑같이 비춰지는 모습이 싫어 좀더 다른 면을 보이려고 귀를 뚫었다”는 게 그의 얘기.
이주형은 요즘 금메달 꿈을 꾼다.새벽마다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 이귀자씨(59)도 아들의 금메달 꿈을 꾼다. 이주형은 “시드니에서 최선을 다하고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겠다”며 차분히 ‘그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