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야구읽기]양궁서 배우는 '겸손'

  • 입력 2000년 8월 29일 18시 43분


일요일 잠실구장에 나타난 양궁대표 선수단의 신기에 가까운 활솜씨에 야구팬들은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LG와 현대 선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연이 끝난 후 대표팀 코치로 보이는 분은 선수들에게 “왜 그렇게 떨었느냐”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필자는 순간 ‘저러니 세계정상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인기 종목이면서도 세계대회를 휩쓰는 양궁선수들과 매일 스포츠전문지의 1면을 할애받으며 팬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의 그날 만남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세계 정상의 양궁선수들이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권리 요구엔 큰 목소리를 내면서 의무는 소홀히 하는 일부 야구스타의 자만, 방자함은 좋은 비교가 되었다.

산만한 야구장 분위기 속에서도 골드에 화살을 내리꽂는 궁사들의 신기나 약 0.158초만의 빠른 스윙으로 안타를 때려야 하는 야구는 무아의 경지에서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올림픽을 앞둔 야구 드림팀의 스타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 만큼 끝없는 자기 반성과 희생정신, 그리고 투지가 뒷받침돼야 세계 정상을 노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완벽을 요구하는 양궁코치의 독려가 참으로 부럽게 느껴졌다.

(야구해설가)koufax@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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