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구정동 석실분(石室墳·돌방무덤)의 모서리 기둥(통일신라 9세기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 이 석조물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이 석조기둥엔 방망이 하나를 어깨에 걸쳐 맨 무인(武人) 한 명이 조각돼 있다. 무덤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한 비상용 방망이일 것 같은데, 여기에 무슨 비밀이….
첫째, 석조물을 자세히 보면 방망이 끝이 휘어져 있다. 일종의 폴로 혹은 하키 스틱이다. 왼쪽 다리를 약간 들고 서 있는 동적(動的)인 포즈로 보아 이 방망이는 운동기구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폴로가 통일신라시대 인기 스포츠의 하나였음을 보여 준다. 그 폴로는 우리식으로 말하면 격구(擊毬)다.
둘째, 무인의 얼굴.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다. 서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사람, 즉 서역인(西域人)이다. 그렇다면 왜 서역인이 폴로(혹은 하키) 스틱을 쥐고 있을까. 이는 폴로가 서역에서 전파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서아시아에서 시작된 폴로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통일신라 때.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상륙했고 많은 신라인이 외국의 신종 스포츠에 열광했던 것 같다.
이 인기는 고려 초기까지 이어졌다. ‘고려사’ 초기 기록엔 ‘젊은 무관이나 부유한 상류층의 자제들이 무예 훈련의 하나로 격구(擊毬)를 즐겼고, 일부 아녀자들에게도 인기였다…. 너무 격구를 좋아해 제발 그만 두고 일 좀 하라는 얘기도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9∼10세기 전후, 폴로(혹은 하키)의 인기는 한반도 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중국이나 일본에선 폴로를 즐기는 모습을 묘사한 벽화 회화가 적잖이 발견된다. 폴로는 요즘의 골프처럼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셈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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