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홍철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은퇴’라는 쓸쓸한 단어 앞에 초라하게 내던져진 별들의 고개 숙인 모습. 화려하게 빛나던 스포트라이트는 어느새 사라지고 무대 뒤의 쓸쓸함만이 지친 가슴을 덮쳐 온다.
여홍철. 90년대 한국 체조의 간판스타로 군림했던 그는 16일 뜀틀 예선에서 11위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조차 실패했다.
이은철▶
그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국가대표를 그만 두고 소속팀을 위해 1년 정도만 선수로 뛸 것”이라고 사실상 은퇴 의사를 밝혔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한국 체조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냈던 그 당당함이 눈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쉽기로 따지면 남자 펜싱팀이 첫 손에 꼽힌다. 관중 한 명 없는 텅빈 체육관에서 묵묵히 칼을 갈아온 이들은 쿠바와의 준결승에서 칼에 연결된 전깃줄이 끊어진 것을 모른 채 경기를 계속하다 다 잡은 경기를 놓치는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성희
한국에 펜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점부터 계산하면 이들이 올림픽 메달의 꿈에 한뼘차까지 접근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0여년.
이은철.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8년만에 재현하려 했지만 어느새 30줄(33세)에 접어든 나이는 속이기 힘들었든지 자신의 주종목인 사격 공기소총 10m에서 예선탈락의 수모를 안았다.
계순희▶
북한 선수단도 인민체육인과 공훈체육인의 칭호를 얻은 스타선수들의 메달 갈증이 계속되기는 마찬가지.
애틀랜타올림픽 여자 유도 48㎏급에서 세계 최강 다무라 료코(일본)를 꺾고 무명 반란의 돌풍을 일으켰던 계순희는 52㎏으로 한 체급 올려 출전한 이번 대회에선 동메달에 머물렀다. 시드니올림픽에서 신설된 여자 역도에서 당연히 금메달을 안을 것으로 기대됐던 이성희(58㎏급)와 유도의 차현향(48㎏급)도 애매한 심판판정과 경기운영 미숙으로 4년후를 기약해야 했다.
<시드니〓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