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루이스올림픽 마라톤은 미국 선수 31명과 그리스, 쿠바 선수 1명씩 33명만 뛰었기 때문에 미국의 집안잔치나 마찬가지였다.
33명 가운데 가장 먼저 메인 스타디움에 뛰어들어온 선수는 미국의 프레드 로즈였다.
그런데 로즈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땀방울 하나 없이 깨끗했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관중석에서 내려와 월계관을 쓴 로즈와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로즈가 들어온 지 15분 뒤에 2위 주자가 들어왔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지쳐 보이는 미국의 토머스 힉스 선수였다.
그런데 힉스에게 2위가 선언되자 자동차로 레이스를 따라 온 심판과 기록원이 로즈에게 달려가 ‘F’자가 들어가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실격을 선언하고 우승자를 힉스로 고쳤다.
로즈는 15km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레이스를 포기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이 로즈를 태워주었던 것이다. 로즈는 차안에서 쥐가 풀리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메인스타디움 바로 앞에서 뛰어내리더니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 전모는 로즈를 태워주었던 트럭 운전사가 나타나 증언하면서 밝혀지게 된다. 로즈는 15분 동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분을 맛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무려 12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은 선수도 있다.
1900년 2회 파리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프랑스의 빵집 배달원 비셀 데아토 선수였다. 데아토는 파리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59분 45초의 기록을 세우며 1위로 들어왔다. 그런데 질식할 듯 더운 날씨에 코스도 좁은 골목길인데다가 대회운영마저 허술해 여러 차례 길이 막혔다. 그래서 데아토는 공식경기로 인정되지 않은 줄 알았다.
비셀 데아토는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12년이 지난 1912년 우연히 올림픽 역사를 뒤지다가 자기 이름이 2회 파리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올림픽에서는 장애인이나 큰 부상을 당하고도 금메달을 딴 의지의 선수가 많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월마 루돌프 선수는 여자 육상 100m를 종전 올림픽 기록보다 0.5초나 빠른 11초에 달려 금메달을 땄다. 200m에서도 역시 24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400m 릴레이에서는 44초4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이 되었다.
월마는 1940년 태어날 때 몸무게가 겨우 2kg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4살 때는 성홍열에 걸려 폐렴을 앓았다. 한쪽 폐렴이라면 괜찮았겠지만 월마는 양쪽 폐렴이었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지만 이번에는 양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8살 때 겨우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었다. 월마는 약한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하루에 10시간씩 달렸다. 산이건 들판이건 무조건 달렸다. 그로부터 11년 후 월마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여자가 됐던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시각장애인으로 남자 수영 200m 개인혼영과 400m 개인혼영에서 2관왕에 오른 헝가리의 타마스 다르니 선수도 양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자였다.
기영노/스포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