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주사를 맞고 출전했지만 전날 다친 갈비뼈쪽은 통증으로 얼얼했고 더 이상 아무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끝나는가….’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두 눈엔 눈물이 맺혔다.
1피어리드 2분18초경. 파테르 공격권을 얻은 아르멘 나자리안(불가리아)의 손이 다친 왼쪽 옆구리를 파고들자 3―0으로 앞서고 있던 김인섭은 몸이 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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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부터 계속된 김인섭의 '불운' |
2분21초. 나자리안이 가로들기를 시도하자 김인섭은 맥없이 들리며 매트에 꼬꾸라졌고 5점을 내주고 말았다. 부상이 아니라면 그렇게 쉽게 당할 김인섭이 아니었다. 이제는 속수 무책. 김인섭은 34초까지 불과 13초 동안에 가로들기 연속 공격을 당했으며 나자리안의 마지막 공격 때 목과 몸이 접히는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등을 매트에서 뗄 수가 없었다. 폴패였다.
나자리안이 매트 위에서 환호하는 동안 김인섭은 온몸의 고통으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보다 값진 은메달’이었다.
이날 김인섭은 왼쪽 갈비뼈와 손가락 부상에다 이미 두 번이나 재경기를 치러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혼을 발휘해 준결승을 거쳐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 초반까지만 해도 김인섭의 리드였다. 경기 시작 31초만에 상대의 목을 치며 중심을 무너뜨리는 변칙 응치걸이로 3점을 먼저 딴 것. 그러나 갈비뼈 부상으로 파테르 공격을 당한다면 이기기가 힘들다는 우려는 현실이 됐고 파테르를 당하자 무너지고 만 것. 게다가 왼쪽 손가락에 전혀 힘을 줄 수가 없어 장기인 상대 겨드랑 파기는 물론 그립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상대에게 아픈 사실을 숨기기 위해 표정 관리까지 신경을 썼다. 하지만 나자리안은 이미 김인섭의 약점을 간파하고 옆구리를 그대로 치고 들어온 것.
“김인섭이니까 은메달을 땄다.” 레슬링 관계자들은 그가 아픈 몸으로 결승까지 올라온 투혼을 보며 금메달에 못지않은 찬사를 보냈다.
<시드니〓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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