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남자하키 준결승전이 열린 올림픽파크 하키장엔 야구나 축구가 열릴 때면 시끌벅적했던 그 흔한 한국응원단도 없었다. 한국 사람 몇 명만이 태극기를 흔들 뿐이었다. 이들의 “한국 파이팅”소리조차 수백명의 파키스탄 응원단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라운드를 누비는 빨간 유니폼의 ‘붉은 악마’들은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올해 세 번 겨뤄 1무2패로 이겨 보지 못한 파키스탄. 과거 전적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이기느냐, 지느냐가 걸려 있었다. 확률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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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 35분을 끝낸 뒤 스코어는 0―0.
하지만 후반전이 되자 경기는 파키스탄쪽으로 기울어 갔다. 후반 1분만에 파키스탄이 슛한 공이 골대를 맞아 가슴이 철렁했다. 후반 5분. 수비수가 파키스탄 모하메드 사와르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바람에 페널티코너가 선언됐다. 위기. 정교하기로 소문난 파키스탄의 페널티코너였지만 한국 선수들은 육탄 방어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수비수 임정우가 공에 맞아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갔다.
계속되는 파키스탄의 파상 공세. 필드에선 한국선수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하지만 악바리같은 투지를 보인 그들의 표정에선 상대를 꺾을 수 있다는 확신감이 보였다.
찬스는 왔다. 후반 21분45초에 얻은 페널티코너. 여운곤이 옆으로 살짝 밀어주자 주장 강건욱은 가운데 포진해 있던 ‘골잡이’ 송성태에게 공을 연결했다. 지체없이 휘두른 스틱에 맞은 볼은 골키퍼 오른쪽 빈 구석으로 정확히 날아가 골네트를 흔들었다.
한국 남자하키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알리는 순간.
파키스탄의 막판 공세를 육탄으로 막아낸 한국선수들은 경기 종료 부저가 올리자 일제히 스틱을 하늘로 날려보낸 뒤 그라운드위로 엎어졌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일어선 ‘작은 기적’이었다.
주장 강건욱은 “선수들 모두가 자신들이 좋아서 선택한 운동이고 최선을 다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같이 고생하면서 지난 2년간 금메달을 위해 준비해 왔다. 이제 결승전에서 우린 젊은 날의 정열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시드니〓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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