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롯데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선이 굵고 정통파 야구를 구사하는 김용희감독(45)을 보고 많은 선배들은 “한국야구를 짊어지고 나갈 재목”이라고 했다. 롯데구단에선 ‘평생감독’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올해 김감독에겐 아무 색깔이 없었다. 그는 늘 불안해보였다. 선수단을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항상 이끌림을 당했다. 하긴 그가 처한 상황이 그랬다.
삼성감독은 누구나 탐내지만 또한 누구나 부담스러운 자리. 게다가 김감독에겐 그 중압감이 더했다. 우선 해태 김응룡 감독의 영입에 실패한 삼성 구단에서 짜낸 대안이라는 점이 탐탁지 않았고 친구를 밀어낸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오랜 친구사이인 서정환 전 삼성감독은 지난해 김용희감독에게 수석코치를 제안하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자칫 지휘체계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위험을 안고 손을 내민 셈이었다. 자신을 다시 야구판에 끌어들인 친구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김용희 호’는 1년 내내 ‘내풍’과 ‘외압’에 시달려야 했다. 선수들은 재능 있고 뛰어났지만 ‘꿰지지 않는 구슬’처럼 융합이 안됐고 1승 1승에 목을 건 구단 프런트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잔뜩 끌어다 모은 화려한 코치진도 별 도움이 안됐다.
정규시즌도 그렇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본 삼성야구는 더 안타까웠다. 마무리 투수 임창용은 한번도 써보지 못했고 올해 스토브리그에서 각각 8억원씩을 주고 데려온 자유계약선수 이강철과 김동수는 ‘패전처리용 배터리’로 등장했다.
이렇듯 개성강한 선수단의 체질을 확 바꾸지 않는 한 삼성야구는 힘이 붙을 리 만무하다는 평가다.
김용희감독은 플레이오프에서 완패한 날 “올시즌은 끝났지만 내년에도 야구는 계속된다”고 했다. 과연 그는 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대구〓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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