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떡이란 ‘빙빙 마는 떡’이라 해서 붙은 이름인데 ‘멍석말이떡’ ‘멍석떡’이라고도 한다. 빙떡은 메밀가루 부침에 팥무채, 또는 콩나물로 소를 박고 둘둘 말아서 만든 떡이다. 남도 잔치 음식에서 부쳐내는 익산의 석류전 진달래화전이나 황해도 해주의 모란꽃전과 같은 호사스런 부꾸미와는 다르다. 솥뚜껑을 엎어놓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부쳐내는 남도의 부침개와 같은 것이다.
남도 음식이 5기(氣), 5미(味)를 그대로 살리는 특징을 갖는다면 제주 음식은 그 지역적 특성 때문에 보다 철저한 근검절약의 ㅈ·냥(근검, 절제)정신과 자비정신을 드러낸다. 이같은 정신은 ‘참받이 물’ 또는 ‘지신 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중산간 지방은 해안 마을에 비해 항상 물이 부족하다. 화산 지대로서 빗물이 그대로 흘러 바다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을 저장하고 갈무리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비가 올 때 지붕의 처마를 타고 흐르는 물을 받으면 ‘지신 물’, 때죽나무 가지로 물을 받으면 ‘참받이 물’이라 한다. 띠로 엮어 물이 타고 흘러내리도록 줄을 만들고 항아리를 받쳐둔다. 이 물은 아주 귀하게 여겨 천제(天祭)에도 썼으며 부잣집에서는 큰 항아리를 십여개나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고, 십여년씩 갈무리하여 묵혀두는 집도 있었다. 이상한 것은 샘물을 길어 저장하면 일주일이면 변질되는데, 이 천수(天水)는 석달 이상만 되면 오히려 파랗고 맑고 깨끗하게 물맛이 살아나 음료수로 쓸 수 있을 만큼 좋아진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혜를 더 보태어, 때죽잎을 띄우고 그 위에다 청개구리 한 마리를 얹어 띄워놓는 그 물항아리 풍경은 제주도가 아니면 만나볼 수 없는 풍경이다. 독특한 지형과 풍토에서 길러진 그들만의 독특한 경험에서 온 것이다.
이 ㅈ·냥정신과 자비정신은 또 ‘굅시’(제사) 모습에서도 살필 수 있다. 이 제사를 ‘식개’(食皆)라고도 하는데, 식개란 다 모여서 먹는다는 마을 공동체 정신에서 온 것 같다. ‘굅시’는 ‘괴우다’라는 어원으로 보아 ‘바쳐올리다’라는 신인공식(神人供食)에서 온 듯하다. 그래서 제사에 참여하는 일을 ‘식개 먹으레 간다’고 하고, 젯날이 와도 부르지 않으면 ‘식개 먹엉?’하고 대단히 서운해한다.
또 제사를 지낸 뒤 제물을 숭늉에 말아서 오래(사립) 어귀에 던지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걸명’이라고 한다. 걸명 속에는 으레 빙떡이 섞여들게 마련이다. 이는 남도 음식에서 사물(捨物), 즉 신령을 따라온 준졸(잡신)의 몫이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중산간의 까마귀가 날아와 걸명을 쪼아먹는데 남도에선 까치가 이 일을 대행한다.
이는 곧 빙떡에 깃들인 자비정신(고시정신)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삼족오(三足烏)가 태양을 향해 날고 있는 그림이 있다. 제주도에서도 본처 후처 남편 세 신위를 모신 경우, 아침에 까마귀 세마리가 걸명을 주워먹었다면 대단한 음덕으로 여긴다.
또 ‘찬코시’’반코시’라는 숭조정신이 있는데 벼슬아치가 있으면 찬코시라 해서 그 체형을 만들고, 없으면 반코시 체형으로 떡을 빚는다. 또 먹다 남은 빙떡은 집에 싸가지고 와서 쇠고기를 저며 국을 끓이는데 이를 ‘칼국’이라 한다. 빙떡이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향토식이며, 또한 메밀은 콜레스톨이 없어 더없이 좋은 건강식이다. 그 성정(性情)이 찬 음식이기 때문이다.
또 식개떡(홀아방떡) 말고도, 장례떡(염장떡), 굿떡(무당떡), 상도꾼을 대접하는 순떡(상둣떡) 등이 따로 있다. ㅈ·냥정신은 무릇 이 음식에서 배울 일이다.
송수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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