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화제]조계현 "말리는 팬때문에 두산 못 떠나겠어요"

  • 입력 2000년 12월 8일 18시 31분


'팀 잔류'를 설득하는 열성팬들.
'팀 잔류'를 설득하는 열성팬들.
8일 오전 두산 조계현(36)의 집을 찾았을 때 거실엔 두산팬들이 모여 있었다.

최근 마음고생이 심한 조계현을 응원하기 위해 집에 모여든 이들은 이날 새벽까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꼬박 밤을 새웠다.

거실에서 새우잠을 잔 팬 가운데 한 명인 이진성씨(27)는 “누가 모이란 소리 한 적 없어요. 다들 자발적으로 찾아온거죠. 조계현 선수는 팬들이 사랑하는 두산 베어스의 선수잖아요. 우린 조계현선수가 두산에 남기를 원하지만 어느 팀에 가더라도 끝까지 응원할 겁니다.”

숙취로 퉁퉁 부은 눈으로 방에서 나온 조계현은 “이 친구들, 정말 극성이죠?”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프로야구를 12년동안 했지만 어느 구단에 있을 때도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팬들과 같이 술 먹고 자고…. 두산이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한 것 같아요.”

조계현은 자유계약선수(FA) 6명 가운데 유일하게 ‘미계약자’로 남아 있다. 한데 계약을 하지 못한 사연이 기구하다. 지난해 삼성에서 쫓겨나다시피 하고 새롭게 둥지를 튼 팀이 두산. 야구를 다시 하게 된 대신 연봉 50% 삭감이라는 아픔을 맛봤다. 1억800만원 연봉에서 딱 절반 깎여 5400만원. “사실 야구선수가 50% 깎인 채 야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시 재기할 자신감이 있었기에 그냥 받아들였어요.”

그는 올 정규시즌에서 7승(3패)을 올리며 선발의 한 축을 든든히 맡았고 포스트시즌에선 제1선발로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눈부신 피칭을 해 팀의 준우승을 일궈내 화려하게 재기했다. ‘의리’와 ‘실익’사이에서 고민하다 FA를 선언한 뒤 소속 구단과의 협상에서 그에게 제시된 조건은 연봉 50%가 회복된 1억800만원에 코치직 보장. 다른 FA선수들은 10억원대가 넘는 다년 계약이 성사됐지만 조계현은 나이가 많다는 게 흠으로 작용했다.

“면담 과정에서 단 한번도 제 요구액을 정확히 밝힌 적이 없습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어요. 구단에서 미리 바리케이드를 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4차례 협상 동안 변화가 없더군요. 일부 팬들은 ‘돈 때문에 두산을 떠나려 한다’는 오해도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돈과 명예 중 선택하라면 명예입니다. 구단에서 어느 정도의 명분을 세워주지 않는 게 섭섭했어요.”

소속 구단과의 협상 기간(2주일)이 끝났지만 조계현은 “두산에서 야구를 하고 싶은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세 가지를 들었다.“우선 가족들, 특히 아들 재웅이(6)의 교육을 위해선 서울이 생활 터전으로 좋을 것 같아요. 두번째는 재기를 하게 해준 구단과 성원해준 두산 팬들이고 세번째는 날 믿어준 김인식감독님입니다.”

그는 “타 구단과의 협상 기간이 끝나는 내년 1월부터 두산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나서겠다”고 했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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