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에서 벌어진 한일축구 평가전이 1대1 무승부로 끝나자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에 희망이 있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적과는 달리 결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경기 내용에서 일본 축구가 월등히 우세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경기에서도 그렇지만 우리의 축구 전문가들이 축구의 핵심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패스가 안 되는데 어떻게 일본은 정확한 패스를 하고, 일본이 위협적인 슛팅을 하는데 반해 우리는 왜 골 결정력이 없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정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일본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는 것만 제대로 분석해도 대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닌 축구 승부의 관건은 얼마나 정확한 패스로 문전 쇄도를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때 일본 축구는 패스의 정확함에 있어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 선수는 상대팀 선수에게 공이 패스되면 동시에 두세 명이 달라붙는다. 마치 우군이 패스해 온 공을 받는 것처럼 뒤나 옆이나 앞이나 바짝 붙어 밀어내고 나꿔채고 빼앗는다. 그러면 우리 선수 대부분은 빼앗기거나 황급히 패스를 하다가 실책을 범한다. 어느 위치에서나 공을 잡는 상대 선수를 에워싸는 삼각 고리가 동시적으로 만들어가는 전술이다. 공을 빼앗긴 우리 선수는 반사적으로 반칙으로 끊어 경고와 퇴장을 당하고 전력에 차질을 생긴다.
한국 선수는 우군이 주는 공도 잡기가 어렵고 잡아도 패스미스가 속출하는 반면 일본 선수는 상대편의 패스까지 가로채어 정확한 패스를 하는데서 경기 내용의 우열과 승패를 갈라놓는다.
▷우리 선수는 일본 선수가 공을 잡아도 달려들지 않거나 달려가더라도 출발이 늦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공의 길목만 막으려고 하기 때문에 패스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선수는 정확한 패스와 예리한 슛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일본팀은 상대팀의 기동력을 봉쇄하고 기를 꺾어 시·공간적 여유를 빼앗는 전술이 핵심이다. 한국 선수들은 상대팀이 패스하는 공을 잡으면 안되는 줄 아는지 상대 선수가 공을 잡아야 주춤하다가 달려가지만 일본 선수는 상대가 공을 잡으면 이미 거기서 필사적으로 공을 빼앗고 있다. 그래서 화면으로 보면 운동장에는 일본 선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본 축구는 밥 숱가락이 입으로 향하는 사이에 얼굴을 내밀어 가로채는 식의 야비하고 악랄한 수법이지만 이것이 현재의 유럽 선진 축구이기도 하다. 한국팀은 비교적 점잖게 축구를 하는 팀에게는 비록 강하다고 하더라도 대등한 경기를 벌이지만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카메룬 등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을 빼앗는(이하 벌떼 축구로 지칭) 팀에게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열세다. 스포츠가 꼭 승리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선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끝없이 달려드는 벌떼 축구를 단순히 압박 축구니 시스템 축구니 하는 표현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국에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일본이 달라진 것은 유럽의 선진 축구를 우리보다 빨리 알고 도입한 것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벌떼축구가 체력소모가 많다고 말하지만 이기고 있을 때의 사기는 지고 있을 때 남아 있는 힘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또 전후반을 거뜬히 뛸 수 있는 선수를 대표 선수로 선발하고 강인한 체력과 기술과 이론으로 무장시켜야 한다.
▷한국 축구의 또 다른 문제는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이다. 지금까지 한국 축구의 수비 허점은 상대 선수가 공을 몰고 들어올 때 뒷걸음을 치면서 골문 앞까지 끌어들이는데 있는 것이다.어느 나라 어떤 팀에서도 하지 않는 낡은 수비 방법은 벌떼식 기동 축구를 하면 해결될 수 있다. 골 결정력 문제도 공을 몰고 들어가다가 좌우로 공을 보내 센터링을 해야 슛팅을 할 줄 아는 고루한 방법부터 지양해야 한다. 수비가 들어올 시간을 주는 이러한 축구는 상대 선수에 대한 위축감과 슛팅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축구는 선수들에게 한발 앞서, 한발 빠르게 또는 동물적 감각으로 하라고 주문하지만 급하게 차는 공은 골키퍼에게 안기거나 문밖으로 나가고, 골인하는 공은 대부분 실축하는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골 결정력을 높이려면 시간 공간성의 본질론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은 골 문전에서 0.5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선수의 자질이 필요하다. 또한 넓은 공간이 아닌 ‘파이프라인’과 같은 작은 슛팅 라인을 볼 수 있는 섬세하고도 예리한 판단력을 기른다면 일본을 이기고 선진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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