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끝없이 이어지는 장외홈런 행진에 팬들은 물론 옆에서 훈련하던 다른 선수들조차 아예 글러브를 벗어 쥔 채 별난 구경거리를 감상하느라 넋을 놓았다. 21일 애리조나주 메사의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 키 1m95에 몸무게 115㎏의 거구. 1㎏에 육박하는 무거운 방망이를 마치 나무 젓가락 다루듯 돌려대는 ‘동양의 거인’ 최희섭(22)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고려대를 중퇴하고 태평양을 건넌 지 불과 20개월. 당시 그에 대한 국내 야구계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투수가 아닌 동양인 타자가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최희섭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입단 첫해 루키리그에서 싱글A로 승격한 그는 이듬해인 작년 더블A의 아이오와 컵스로 다시 올라갔다. 지난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선 리그 타격, 출루율, 장타력 1위와 함께 홈런 2위를 휩쓸며 그의 이름 석자를 시카고의 샛별 명단 1위에 올려놓았다.
올초 팀의 컨셉션 행사에선 수많은 팬들이 새미 소사와 같은 슈퍼스타를 제쳐놓고 그에게만 질문공세를 펼쳐 아직 영어가 능통하지 못한 그를 당황케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워낙 활달한 성격 탓에 보디 랭귀지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런 그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참가하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초대를 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곳 메사에서도 최희섭의 인기는 단연 독보적이다. 새미 소사가 아직 캠프에 합류하지 않아 연습타구를 칠 때면 그의 비거리를 따라올 경쟁자가 없기 때문.
투구에 막혀 나무 방망이가 쪼개져도 홈런으로 연결시키는 그를 보고 선수들이 붙여준 별명은 ‘트리 킬러’. 언론에선 그를 ‘빅 키드’라고 부르고 있었다.
더구나 이제 팀은 물론 다른 구단의 메이저리그 선수와 프런트 직원들도 그를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졌다.
최희섭이 시카고 컵스의 보배라는 것은 이날 오전 훈련에 앞서 구단에서 흑인 태권도 강사를 초빙해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돈 베일러감독을 비롯해 선수단 전원에게 강의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팀훈련이 끝난 뒤 가진 인터뷰에서 최희섭은 “미국에 가면 힘들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백인이든 흑인이든 가리지 않고 동료 선수들이 너무 잘해주고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찾는데 오히려 귀찮을 정도”라고 이곳 생활을 설명했다.
그는 또 “주전 1루수인 마크 그레이스가 김병현 선배가 있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됐지만 현재 나보다 앞서 있는 1루수 경쟁자는 4명이나 된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항상 이기는 승자는 없다는 점이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최희섭은 작년 새미 소사와 우연히 만났을 때 “메이저리그로 하루 빨리 올라오라”는 격려의 말을 들었다. 이 약속을 올해안에 꼭 지키고 말겠다는 그의 눈빛이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메사(미애리조나)〓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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