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고교 때부터의 꿈이었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이역만리 한국에서 해내다니….
결승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큰딸 세영(4)을 끌어안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아내 품에 안긴 둘째딸 세린(1)은 영문도 모른 채 눈만 깜빡였다. 일주일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응원하러 오신 어머니(65·머리 워터스)도 풀코스를 완주해낸 아들이 여간 대견스럽지 않으신가 보다. 입에서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해낸 건 바로 가족의 힘이었다. 그리고 마음 따뜻한 서울 시민들의 격려 덕분이었다.
광화문에서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이 정도쯤이야’하는 자만심에 차 있었다. 95년 어쭙잖은 자신감으로 뉴욕 마라톤에 참가신청을 했다가 연습부족으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번 대회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한달반 전부터 한강 둔치에서 강도를 높여가며 나름대로 충분히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5㎞ 지점을 지나면서 다리가 천근만근 내려앉았다. 함께 달리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주저앉거나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다. 다리가 풀리면서 나 역시 걷기 시작했다. ‘결국 난 제대로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나…’라는 패배감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개를 떨군 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파이팅”이라는 고함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연도에 늘어선 서울 시민들이었다. 노란 머리의 이방인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았다. ‘그래 참고 견디는 거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을 두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를 악물었다. 달리면서 무슨 주문처럼 딸들의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40㎞ 지점을 돌자 멀리 잠실주경기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감과 ‘결국 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레이스 초반의 자만심은 어느새 감사함과 경건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4시간22분. 첫 완주치고는 괜찮은 기록이란다. 그러나 나는 완주를 통해 기록보다 소중한 두 가지를 재확인했다. 바로 인생에 대한 경건함과 가족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이다.
특히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한국 사람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드린다.
<데이비드 워터스(34)는?>
현재 김&장 법률사무소 국제통상 관련 변호사로 90년 UCLA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편입했고 94년 미국으로 돌아가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97년부터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지난해 11월 ‘김&장 법률사무소’의 스카우트로 한국으로 왔다. 95년 결혼한 부인 김인향씨(31)와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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