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그라운드의 ‘적토마’ 고정운(35·포항 스틸러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25일 열린 2001아디다스컵 조별리그 개막전 안양 LG와의 홈경기에 나선 고정운은 몸이 가벼웠다. 전성기때의 스피드와 체력엔 비할 수 없었지만 오른쪽 날개에서 공격의 활로를 찾아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후반 3분 상대 수비수에 채여 왼쪽 종아리에 타박상을 입어 벤치로 물러나왔지만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 모습이었다.
1년반전인 99년 10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을 크게 다칠 때만해도 다시 그라운드에 나선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고령’인데다 큰 부상까지 겹쳤으니 ‘선수생명이 끝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의 축구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그를 다시 팬앞에 서게 했다.
사고를 당한뒤 각고의 재활훈련으로 1년동안 몸을 만들었다. 하지만 구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래서 이번시즌도 ‘조건부’로 뛴다. 구단측이 4월말까지 활약상을 보고 계약하겠다고 결정한 것. 처음엔 자존심도 상했다.
“내가 잘못해서 초래한 결과다. 그라운드에 계속 서기 위해선 한경기 한경기 좋은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천안 일화시절 정규리그 3연패의 주역인데다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일본 J리그(세레소 오사카)에서도 뛰는 등 한시대를 풍미했지만 축구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는 없었다.
“돈때문이 아니다. 팬앞에서 뛸 수만 있다면 좋다. 처음엔 올시즌만 뛰고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내가 설 자리는 아직 그라운드다. 구단과 팬이 원한다면 끝까지 뛰겠다.”
하지만 부담감도 떨칠 순 없다. 나이도 있지만 포지션이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날개인데다 최근 축구의 흐름이 더욱 기술축구화 하고 있어 따라가기에 벅찬 것이 사실.
고정운은 “후배들에 폐 안끼치고 팬들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 은퇴할때까지 부상 안당하고 뛰기를 바랄뿐이다”고 말했다.
최순호 감독은 “1월 전지훈련부터 13개의 연습경기를 모두 소화해 제컨디션을 찾았다. 25일 경기의 플레이도 좋았다. 경기감각만 되찾는다면 날개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