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붙임성 좋은 용병, 상 하나 더 받는다

  • 입력 2001년 4월 1일 19시 09분


야구(82년) 축구(83년)보다 10여년이나 뒤늦게 프로무대에 뛰어들었지만 프로농구의 인기는 야구나 축구에 못지않다. 프로농구가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덩크슛을 밥먹듯이 내리꽂는 외국인 선수들의 등장 때문. 그러나 용병 도입은 모든 일이 그러하듯 동전의 앞뒷면처럼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용병들이 득점, 리바운드 등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는 바람에 국내선수들은 보조선수로 전락해 버린 것.

올 시즌 용병 농사에 가장 성공한 팀은 삼성. 삼성은 아티머스 매클래리와 지난 시즌 동양에서 뛴 적이 있는 ‘성실파’ 센터 무스타파 호프를 영입, 정규리그 한 시즌 통산 최다승으로 1위에 오르며 챔피언결정전 등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다.

삼성은 지난해 8월 미국 시카고에서 매클래리를 점지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클래리를 뽑은 안준호 코치는 본사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이제 우리가 우승하는 일만 남았습니다”고 했을 정도.

매클래리는 명랑한 성격에 국내선수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져 코칭스태프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정규시즌이 개막되기 전 벌어진 시범경기에서 있었던 일. 상대선수가 매클래리에게 파울성 플레이를 했지만 심판의 휘슬은 끝내 울리지 않았다. 다른 선수 같으면 얼굴을 찡그리며 화를 냈을텐데 매클래리는 실실 웃으면서 기자석으로 다가와 신문사 명패를 치워놓고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기자에게 심판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 왜 저러느냐”고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그는 “기자니까 잘 알 것 아니냐”며 “나중에 만나서 꼭 얘기해달라”는 부탁까지 남겼다.

스포츠신문 등에서 선정하는 주간 및 월간 MVP 단골손님이었던 매클래리는 씀씀이도 남다르다. 각종 상금을 받으면 혼자 쓰지 않고 동료 선수는 물론이고 주방 아주머니에게도 나누어줘 주위 사람들을 감격시키곤 했다. 심지어 삼성전자에서 파견 나온 직원을 따로 불러 2만원을 집어주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했다.

‘막슛’의 대가 데니스 에드워즈와 트리플더블 작성기계 리안 데릭스를 가동해 4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던 SBS도 용병 덕을 톡톡히 본 경우. 올시즌 7차례나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리안 데릭스도 매클래리만큼 심성이 곱다. 정규리그가 끝나고 김성철 등 동료들과 영화구경을 가는 길에 걸인을 본 데릭스가 갑자기 앞으로 달려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걸인에게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데릭스는 인근 편의점으로 들어가 샌드위치 등 음식을 한아름 안고 나와 거지에게 모두 줬다. “너무 불쌍하게 보여 그랬다”는 게 데릭스의 말.

반면 올 시즌 득점1위 에드워즈는 데릭스와 비교될 만큼 이기적인 면이 있어 코칭스태프가 융화문제로 고생한 케이스. 한번은 양지 숙소에서 낮잠을 즐기던 김성철과 문필호가 난데없이 날아든 날계란에 맞는 봉변을 당했다. 사건의 주인공은 에드워즈. 며칠 전 김성철이 자신의 방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에드워즈를 나무란 데 대해 앙갚음했던 것.

플레이오프 직전 에드워즈는 포인트가드 은희석을 들어올린 뒤 그대로 코트에 집어던져 하마터면 부상당할 뻔했다. 만일 탈이 났더라면 팀 전력에 커다란 공백이 생길 것은 뻔한 일. 그러나 에드워즈의 대답이 걸작. 그는 “희석이가 나를 보고 웃기에 그냥 장난쳐본 것”이라고 말해 코칭스태프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 전 창/ 동아일보 체육부 기자 jeo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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