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그렇게 화합과 감사의 마음이 오고 가는 따뜻하고 고매하고 아름다운 경기였을까? 아니다. 사실상 그날의 경기는 화합과 감사의 의미로 제공된 무료 경기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반대 집회나 행여 생길지 모르는 경기 진행 방해를 우려한 구단측의 관중동원책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날 경기장에서는 200여명이 기독교인들이 일화 구단의 성남시 연고권을 철회하라는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경기를 보느라고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습니다. 쩝!) 다행히 구단의 '공짜' 전략이 보기 좋게 성공하는 바람에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는 1만 8천 관중들의 목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분명히 성남 문제는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적 신념이나 순수한 신앙심을 누가 뭐라하겠는가마는, 지금의 성남 사태는 기독교인들이 오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소한 내 기준에는!) 그러나, 조금만 시계추를 뒤로 돌려 본다면 일화의 연고지를 철회하려는 성남의 기독교인들을 나무라기 전에... 축구인, 축구팬, 그리고 그 누구 보다도 일화 구단은 지금의 현실이 모두 당당하고 떳떳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성남 축구팬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기 전에 천안의 축구팬들, 그리고 강릉의 축구팬들도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 천안 일화가 연고지 이전을 결정했을 때, 천안 일화의 서포터스 클럽인 일레븐 플러스를 비롯한 천안의 축구팬, 축구인들은 연고지 이전 반대 운동을 벌였다. 물론, 빽도 없고 힘도 없는 팬들이 깨졌다. 더 좋은 물을 찾아 떠나려는 구단, 구단이 원하는 시설과 인프라를 제공하기에는 너무 인색한 천안시의 결정 앞에 천안의 축구팬들은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팀을 떠나 보내야 했다. (이 당시에도 기독교인을 중심으로한 안티 세력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일화가 천안을 떠난다는 말이 나올 무렵 가장 유력한 일화의 새 연고지로 강릉이 부각되었다. 강릉이 어디인가? 교통편이 불편하고 지역의 인구과 경제 규모가 작을 뿐, 축구에 관한 열기라면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곳이다. 어지간한 축구팬 치고 강릉 상고와 강릉 농공고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그들의 라이벌전은 유명하며 유명 선수를 많이 배출하였다. 아마추어 팀인 강릉 시청 팀 또한 실업 리그에서 우승권의 전력을 갖춘 팀이다. 특히 작년 FA 컵에서는 강릉 상고와 강릉 시청이 함께 출전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을 만큼 강릉 축구의 힘은 매우 강하다.
당근... 일화의 강릉 홈 이전이 구체화 되기 시작하자 강릉의 축구인과 축구팬, 강릉시는 적극적인 유치에 나섰다. 공설 운동장에 야간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조명탑도 새로 설치했다. (이거이... 점등 기념 첫 경기 때 아작나는 촌극을 벌이긴 했지만... 그날도 필자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쩝!) 시내 곳곳에 일화의 홈 이전을 환영하는 플랙이 걸렸다. 천안 일화의 K-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박종환 전 감독이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까지 플러스 알파가 되기에 이르렀으니... 구체적인 프로팀 유치 운동이 전개되면서 거의 도장을 찍는 일만 남았는데...
여기에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남이다. 그렇잖아도 수도권에 미련이 남아 있는 일화로서는 귀가 번쩍 뜨일 수 밖에! 애당초 일화의 홈은 부천, 안양과 함께 서울이었으나 서울을 비우기로 함에 따라 천안으로 홈을 옮긴 마당에... 함께 서울을 비웠던 SK와 LG는 서울에서 살짝 비껴간 부천과 안양에 둥지를 틀었겠다... 더구나 부천은 버젓이 부천이 아닌 목동에서 경기를 하지 않는가?
결국... 축구에 관해서라면 남다른 열정을 가진 강릉도 일화를 잡지 못한 채 짝사랑만 하고 만 셈이다. 프로팀 하나 가질 꿈에 부풀어 기대만 크게 했다가 완전히 ‘새 된’ 꼴이다. 일화 구단은 천안의 축구팬들을 울리고, 또한 강릉의 팬들마저 울린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하키인들이다.
하키... 잘 아시다시피 비인기 종목이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때는 '메달 기대종목' 또는 '효자종목'이라고 불리지만, 하키는 분명히 이 땅에서 푸대접 받는 비인기 종목이다. 대학을 마친 다음 갈 곳이 없다고, 실업팀 몇 개만 더 생기면 원이 없겠다고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바로 하키 선수들이다.
그리고, 성남! 여기에는 우리 나라에 단 하나뿐인 하키 전용 구장이 있었다. 비인기 종목임에도... 우리의 여전사들께서 금메달을 번쩍번쩍 따오는 것이 너무 기특하기에, 큰 맘 먹고 하키인들에게 꿈의 구장 하나가 성남에 생겼던 것이다. 열심히 뺑이 쳐서 금메달 더 따오라고... (달랑 인조잔디 구장 하나였지만...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사시사철 연습할 수 있는, 그리고 국제 규모의 경기를 할 수 있는 꿈의 구장과 다름 없었다.)
바로 이 하키 전용구장이 오늘의 성남 종합운동장, 즉 성남 일화의 홈 구장이다. 겨울에도 파~아랗기만한 사철 잔디가 줄무늬 곱게 깔려 있는 성남 종합운동장... 결국 단 하나 뿐이었던 하키 선수들의 터전을 뭉개고 만들어진 운동장이다.
당연히 하키 전용구장이 없어지고 프로축구 경기를 위한 사철 잔디가 깔린다는 말이 나왔을 때 하키인들의 반대는 거셌다. 우리나라에서 항상 공식대로 행하는 서명운동, 집회, 궐기대회 등등의 저지 운동이 있었지만, 역시나... 비인기 종목 하키의 힘은 그리 세지가 않았다. 성남시는 하키 전용구장 보다는 프로 축구팀을 원했고, 2002년의 대업을 향해 힘차게 약진하는 축구 앞에 하키인들 외에는 아무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그렇게... 천안과 강릉의 축구팬들을 등지고, 또한 가뜩이나 땀 반 눈물 반 흘리며 운동하는 하키 선수들에게 허탈감만 심어 주면서 만들어진 것이 '성남 일화'라는 상표다. 그리고, 오늘은 그곳의 축구팬들이 '기독교'라는 또 하나의 '인기종목' 집단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다. 결국, 한 번 잘못된 길로 굴러가기 시작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렇듯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하늘의 법칙을 톡톡히 체험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보다.
아마도 성남에서의 싸움은 축구팬과 비기독교인들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단, 성남시와 일화 구단이 진실된 마음으로 축구를 대할 때 가능한 일이다. 천안을 버리고 강릉의 기대를 저버린 것처럼 일화 구단이 또 다른 미봉책을 택한다면, 설사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해도 그 뿌리는 결코 튼튼할 수가 없다. 또한 차기 선거에서 자신에게 돌아올 표 때문에 묘수와 짱돌을 굴리는 김 아무개 시장의 정치적 터전이 확고할 리 없다.
여기서 바로 잡아야 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준 만큼, 더 값진 결실을 맺을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축구에 대해, 그리고 축구를 바라보는 팬들 만큼이나 진지하고 끈질긴, 한결 같은 애정을 가져 달라는 것이다. 종교 보다도, 시장의 표밭 보다도, 그리고 구단의 상업적인 이익 보다 훨씬 절실하고 순수한 스포츠 팬들의 마음을 더는 아프게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성남에서 멋진 프로 축구팀을 만들고, 거기서 마련한 돈으로 하키 실업팀을 하나 만들어 주겠다는 근사한 꿈을 한 번 가져보기 바란다. 그런 진실되고 올바른 신념이 바로 선다면 공짜 관중 1만 8천명을 불러 들여서 기독교인들의 세력을 잠재우는 촌극은 처음부터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당장 다음 경기 때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지난 토요일의 성남 종합 운동장... '성남일화의 연고권을 인정하라!!'는 문구가 담긴 스티커를 나누어 주던 성남 일화 서포터스 '천마불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최소한 그들에게는 금전적인 이익이나 종교세력, 정치권력 따위의 것들보다 훨씬 값진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성남 일화 문제를 둘러싼 모든 당사자들이, 천마불사라는 가장 작고 약한 단체를 보고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알량한 이익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아니 그냥 모든 스포츠 팬들이 그런 것처럼, 단순하고 솔직하고 순수하게... 뜨겁게... 그렇게 살자. 잔대가리 굴리지 말자. 이익과 세력, 권력 앞세워서 남 못살게 굴지도 말자. 거기서 거기다!
자료제공 : 후추닷컴(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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