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최근에 들은 얘기인데, 한 스포츠 종목에 있어서 그 동안의 역사를 통해 쌓아놓았던 Stats의 개념이 달라지기 시작할 때, 흔히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표현하는 모양이더군요. 저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NBA에도 새로운 시대가 오려나 봅니다.
지난 4월 13일경, NBA 사무국은 지난 올스타 브레이크 전후로 꾸준히 논의되기 시작했던 새로운 룰에 대한 네 가지 주요 현안들의 통과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겠지만, 반복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리걸 디펜스 가이드라인 제거
* 디펜시브 3초룰 적용
* 프런트 코트로 넘어오는 제한 시간을 10초에서 8초로 단축
* 공을 가진 선수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가벼운 신체 접촉 허락
팬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단연 첫 번째, 일리걸 디펜스 가이드라인의 제거입니다. 왜냐하면 이 조항은 실질적으로 지난 1947년 1월 12일 이후 NBA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존 디펜스(지역 방어)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동안 많은 심판들과 코치들, 그리고 선수들을 괴롭혔던 일리걸 디펜스 콜을 우리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적극적인 헬프 디펜스와 자유로운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첫 번째 룰 개정은 이번 룰 개정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NBA가 90년대 NBA의 지존이었던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인기 하락, 즉 관중 동원 부진과 시청률 하락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껴안게 되었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게다가 마이클 조던의 은퇴 직전, NBA 사무국과 선수 노조는 직장폐쇄라는 멍청한 행각을 벌이며, 98-99 시즌을 몽땅 날려버릴뻔 했으며, 이후 NBA는 팬들의 관심을 살만한 이렇다 할 카드를 꺼내보이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NBA는 두 가지의 악재를 추가로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리그 평균 득점와 하락과 아이솔레이션의 높은 의존도였습니다. 리그 평균 득점이 하락하고 있다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므로 각설하고 넘어가겠습니다만,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난무하는 아이솔레이션의 의존도는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네이스미스 박사가 처음으로 농구라는 종목을 탄생시켰을 때, 그는 '농구는 팀 스포츠' 라는 단서를 붙였습니다만, 10명이 뛰는 코트 위에서 일대일 공격을 가능하게 하는 맨투맨 디펜스 체제 하의 아이솔레이션은 그러한 정신에 위배되는 요소였던 것입니다. NBA나 KBL처럼 일리걸 디펜스 룰 하의 맨투맨 디펜스는 일대일 기량이 뛰어나고 화려한 선수들의 기량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아이솔레이션이 가능하다라는 점에서 분명히 매력이 있습니다만 문제는 그 빈도수가 너무 많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4쿼터 막판, 대다수의 팀들은 팀내 에이스를 통해 일대일 공격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명의 농구가 연출되는 동안 나머지 8명이 가만히 지켜보는 광경은 48분 내내 수시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 되버렸습니다.
이러한 플레이 덕분에 화려한 슬램덩크나 개인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늘겠지만, 그만큼 농구의 최대 매력이기도 한 조직력 즉, 수 차례의 볼 무브먼트나 공을 들고 있지 않는 선수들의 위치 선정을 위한 움직임 등의 중요도가 조금씩 낮아져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 방어 수비의 태동(?)에 의해 극단적인 아이솔레이션은 시간 제한이 없는 더블팀 수비로 좀 더 수월한 봉쇄가 가능해졌고, 각 팀들은 예전보다 강화된 수비벽을 뚫기 위해 보다 많은 움직임과 볼 무브먼트를 가져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될 예정입니다. 즉, 첫 번째 룰 개정으로 인해 NBA는 보다 '팀 스포츠'에 근접해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럼 NBA는 일대일 공격으로부터 나오는 뛰어난 선수들의 돌파에 이은 화려한 동작들을 포기하려는 것일까요? 그걸 막고자 새롭게 적용된 룰이 바로 '디펜시브 3초룰' 일 겁니다.
오펜시브 3초룰은 공격을 시도하는 팀의 선수가 페인트 존 내에서 3초간 머무를 수 없게 하는데, 디펜시브 3초룰은 역으로 수비를 하는 팀의 선수가 페인트 존 내에서 3초간 머무를 수 없게 한다는 조항입니다.
이는 지역 방어의 적용으로 인해 높은 신장과 'Dominance'를 갖춘 빅 맨들이 수비면에서 굉장한 위력을 발휘할 것에 대한 대응책입니다. 막말로 지역 방어 체제 하에서는 7피트의 빅 맨이 림 바로 아래 편에서 짱박혀 있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으니까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디펜시브 3초룰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로포스트 수비를 담당하는 빅 맨들은 공격수를 밀착 방어할 때, 디펜시브 3초룰에 적용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이는 공을 가진 선수가 오펜시브 3초룰에 크게 관여받지 않는다는 부분과 흡사합니다. 즉, 디펜시브 3초룰의 목표는 밀착 방어를 하지 않는 상황에 있는 빅 맨들을 페인트 존으로부터 몰아냄으로써 코비 브라이언트나 빈스 카터, 앨런 아이버슨 등의 돌파에 이은 화려한 공중쇼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NBA의 매력 중의 하나는 외곽에서 수비수를 제치고 골밑까지 파고든 선수가 슬램덩크를 작렬시키거나 멋진 공중 동작을 연출해내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의문점을 갖게될 것입니다. '지역 방어를 인정함으로써 극단적인 아이솔레이션의 감소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그 와중에 뛰어난 돌파력을 갖춘 선수들을 위한 보호막도 갖추었다라는 건 알겠는데, 그것이 평균 득점 상승으로 연결되지는 않는게 아니냐' 라고 말이죠. 아마도 맞는 얘기일 겁니다.
수비의 개념이 자유로운 NCAA 리그의 팀들은 대부분 2-3 지역 방어나 맨투맨 디펜스를 사용합니다. 이번 2001년 토너먼트를 보니 대다수의 팀들은 맨투맨 디펜스를 사용하더군요. 일대일 수비를 기본으로 하되 기습적인 더블팀으로 실책을 유도하거나 로포스트에 볼이 가면 즉각적인 헬프 디펜스로 상대를 압박.. 여기까지는 NBA와 별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다만, NCAA의 맨투맨 디펜스와 NBA의 맨투맨 디펜스의 근본적인 차이는 일리걸 디펜스 가이드라인의 존재 여부입니다. NCAA에서의 맨투맨 디펜스에선 일리걸 디펜스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일대일 공격의 견제와 로테이션 수비가 가능합니다. 즉, 지역 방어의 장점을 갖고 있는 맨투맨 디펜스라는 것이죠. NBA를 보면 자주 나오는 장면이지만, 상대 에이스가 일대일 공격을 시도할 때, 근처에 있는 수비수가 일대일 공격을 시도하려는 선수를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자기 마크맨의 움직임을 놓쳐 일리걸 디펜스의 재물이 되는 장면은 NCAA에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달려들어서 견제하면 그만이니까요. 여기서 생기는 오픈 찬스는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으로 커버가 가능하며, 맨투맨 디펜스라 해도 각 선수들은 기본적인 지역 방어 체제로서 오픈 찬스에 대한 위기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기본적인 내용입니다만, NBA가 이번에 시도하는 룰 개정의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선 언급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아 적어봤습니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적용되는 이번 룰 개정이지만, 당장 내년 시즌, NBA 무대에서 다양한 지역 방어가 나올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적응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가 않으니까요. 아마 많은 팀들은 그래도 맨투맨 디펜스를 기본 수비 옵션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제 NBA의 맨투맨 디펜스도 NCAA의 맨투맨 디펜스처럼 자유를 얻게 됨으로써 한층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 여기에 수시로 사용될 지역 방어.. 예년보다 리그 전반적인 수비력이 강화될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균 득점의 상승을 기대한다는 건.. 조금 무리가 아닐까 보여집니다.
게다가 지역 방어를 허용하는 리그에서는 대부분 공격 제한 시간이 30초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지역 방어를 깨는 데 있어서 상당한 애로 사항을 겪습니다. 만약 이것을 NBA 현행 룰은 24초 내에 깨야만 한다면? 무리한 슛 셀렉션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번째 룰 개정 역시 수비의 강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세 번째 룰 개정을 살펴봅시다. KBL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죠? 볼 소유가 다른 팀으로 넘어간 이후, 반드시 8초 안에 프런트 코트로 볼이 넘어와야 한다는 룰 얘기입니다. NBA는 지금까지 이 시간을 10초로 규정해두고 있었으나 이번 룰 개정을 통해 KBL과 동일한 8초로 단축시켜버렸습니다.
'10초->8초'의 의미는 그동안 하프 코트 오펜스의 최소 제한 시간인 14초를 2초 가량 증가시킨 것인데, 이는 앞으로 보다 난해해질 수비 전술을 깨뜨리기 위한 작은 배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마도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NBA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빠른 농구'입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헤드코치로 명성을 떨쳤던, 일반 팬들에게는 마이클 조던의 스승으로 더욱 유명한 딘 스미스는 농구에서 가장 쉬운 득점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속공, 그리고 두 번째 속공'
체계적인 지역 방어를 깨는 것보다는 상대의 수비 진영이 갖춰지기 전 상태에서의 공략이 더 쉽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속공 득점입니다. 만약 첫 번째 속공이 상대 수비진의 빠른 백코트로 인해 무위에 그친다면, 후방에서 전진해오는 선수들을 축으로 두 번째 속공을 노려볼 수 있습니다. 지역 방어를 셋업한다는 건 정말로 체계적인 수비 전술을 갖춘 팀이 아니고선 몇 초 내에 해내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니까요.
즉, 이번 세 번째 룰 개정은 '지역 방어 깨는 건 쉬운 게 아니다. 달려라. 달리면 해결된다. 빠른 농구처럼 재밌는 건 없고, 그 것은 평균 득점 상승으로 연결될 것이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좋아하는 폭스 스포츠의 명칼럼리스트 마이크 먼로는 NBA가 최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을 때, 그 이면에는 빠른 농구가 반드시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0년대 최강팀 보스턴 셀틱스에게는 빌 러셀이란 존재가 있었지만, 그들의 농구가 재밌었던 건 밥 쿠지를 필두로 펼쳐지는 빠른 농구였으며, 80년대에는 연일 매직쇼를 보여줬던 쇼타임 레이커스가 래리 버드의 셀틱스와 라이벌을 이루고 있었고, 90년대에는 마이클 조던의 존재가 있었다라는 점..(아마 90년대 마이클 조던을 빠른 농구와 결부시킨 건 그가 보여주었던 속공에서의 환상적인 몸놀림과 에어쇼를 기억했기 때문일 거라 추측합니다)
정리하자면, NBA가 시도한 이번 룰 개정은 평균 득점 상승에 대해선 그다지 연연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 위에서 언급한 효과들을 십분 활용해 농구를 보다 박진감넘치고, 역동적인 팀 스포츠로 정착시켜 팬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고 그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사보겠다는 의도. 이 정도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군요.
그러나 이번 룰 개정을 두고 선수들이나 코치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조지 칼처럼 적극 찬성파가 있는가 하면, 글렌 리버스처럼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스티브 프랜시스같은 경우는 'I hate it' 시리즈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고, P.J 브라운은 이번 룰 개정이 농구 경기를 짓이겨 놓을거라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겁니다. 이번 룰 개정의 결정권은 그들의 고용주인 구단주들의 몫이었고, 그들이 원하는 건 NBA의 전통이 아닌 팬들의 관심, 즉 막말로 'Money'니까요.
분명 재미있고 이색적인 룰 개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각 팀들이 새로운 룰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그만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름에 모여 훈련을 갖는 팀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10월 초에 열리는 트레이닝 캠프가 각 팀의 코치와 선수들이 실질적으로 룰 개정 사항의 적응을 시작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룰 개정이 NBA가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Stats의 개념을 어느 정도 파괴해줄 지에 대해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년과는 비교가 안 되는 평균 득점의 하락은 예견된 일처럼 보이며, 오히려 수준급 빅 맨들의 기록 변동 여부와 외곽 슈터들의 득세, 그 어떤 시즌보다 더욱 타이트해질 수비 등으로 인한 Stats 변동이 어떤 식으로 일어날 지가 저로 하여금 상당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군요. 2001년 플레이오프만큼이나 기다려지는 01-02 시즌입니다.
NBA.com의 스튜 잭슨은 이번 룰 개정을 두고, NBA 선수들은 위대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남아있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직면하게 될 예년과는 개념이 다른 새로운 리그.. 생각만 해도 설레이는군요.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말이죠.
제공:후추닷컴(http://www.ho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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