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프로복싱의 간판격인 헤비급의 양대 기둥이 잇달아 무너졌다.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카니발시티에서 벌어진 WBC―IBF 헤비급 통합타이틀전에서 현역 최강자로 꼽히던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가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무명의 하심 라만(28·미국)에게 5회 KO패로 주저앉는 대이변이 연출됐다.
레녹스 루이스의 패배는 그와 함께 현 세계 헤비급 무대를 양분해온 홀리필드가 지난달 4일 존 루이스(미국)에게 0―3 판정패로 무참하게 무너진 이후 연달아 터진 세계 복싱계의 충격.
이날 경기가 15번째 세계 타이틀전이었던 루이스에 비해 라만은 이번이 자신의 첫번째 세계 타이틀전. 키도 라만이 7㎝나 작았고 도박사들은 경기 전 20 대 1로 루이스의 승리를 예상했었다.
세계 헤비급 타이틀전 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이날 경기는 ‘토끼와 거북’ 우화를 연상시킨 한판. 우화에서처럼 ‘토끼’ 루이스는 자만하다 ‘거북’ 라만에게 보기 좋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경기장이 해발 1800m가 넘는 고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영화촬영 등을 하느라 경기 10일 전에야 현지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평소보다 체중이 5㎏이나 무거운 115㎏인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 반면 라만은 미국 뉴욕주에서 고지훈련을 충실히 한 뒤 경기 한달 전 일찌감치 현지훈련에 돌입했다.
아니나다를까. 루이스는 2회부터 숨을 몰아쉬며 산소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5회부터 적극 공세에 나선 라만은 2분32초 만에 체중이 실린 강력한 오른손 휘어치기를 루이스의 왼쪽 턱에 명중시켰고 캔버스에 쓰러진 루이스는 카운트가 모두 끝난 뒤 주심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일어날 수 있었다. 이날 경기로 라만은 35승(29KO)2패, 루이스는 38승(29KO)2패1무를 기록했다.
경기 후 루이스는 “믿을 수 없다. 가능한 빨리 재경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라만은 “루이스나 타이슨 등 누구와도 싸울 자신이 있다”면서도 재경기 일정에 대해서는 확답을 피했다.한편 이날 경기는 1990년 마이크 타이슨―버스터 더글러스전의 ‘42 대 1’과 96년 타이슨―홀리필드전의 ‘25 대 1’에 이어 도박사들의 예상을 뒤엎은 세 번째로 큰 파란으로 기록됐다.
<이현두기자>ruch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