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열릴 서울 월드컵 사격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선수는 모두 2명. 강초현은 선발전으로 치른 최근 3개 대회에서 극심한 부진을 보이며 종합 18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강초현이라는 신데렐라의 등장으로 모처럼 맛보았던 ‘사격 붐’은, 그간 비인기종목의 설움에 시달린 사격연맹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열매였다. 득달같이 쏟아질 비난을 의식하면서도 결국 상품성 있는 강초현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던 연맹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꾸며냈고, 강초현이라는 희대의 주연배우를 위해 조연배우를 물색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낙점한 배우는 최대영(19·창원군청)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서울 월드컵 사격대회 출전 티켓을 따낸 장미(21·화성군청). 장미와 소속팀 화성군청은 각본대로 총대를 멨다.
선발전이 끝난 뒤 장미는 “올해 대학(오산전문대학 산업디자인학과) 야간과정에 입학하고도 훈련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면서 “초현이가 대신 나가 잘해 줬으면 좋겠다”는 말로 천연덕스럽게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스포츠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강초현의 대표 선발은 표면적으로는 장미의 ‘아름다운 양보’로 피날레를 장식했지만, 그 순수성을 믿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사격연맹은 기다렸다는 듯 “장미의 좋은 의도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라는 군색한 변명과 함께 강초현의 대표 선발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을까. 연맹은 모 방송사에서 서울 월드컵 사격대회의 이례적인 생중계를 약속받기도 했다.
그러나 연맹이 놓친 함정도 있다. 애초에 강초현 스스로가 ‘원칙론’에 의해 스타가 된 케이스였기 때문. 지난해 무명의 고교 3년생 강초현이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했을 때에도 사격계 일각에서는 “국제무대에서 검증한 이선민(청원군청)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한 바 있었다. 당시 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한 이선민은 총점에서 강선수에게 1점밖에 뒤지지 않아 이같은 주장은 한층 설득력이 있었던 것.
그러나 강선수의 소속팀 유성여고는 팀 해체까지 불사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연맹도 이에 굴복, 시드니 스타 강초현의 탄생이 가능한 것이었다. 누구도 점치지 못했던 강초현의 올림픽 은메달과 그에 따른 ‘사격붐’은 따지고 보면 당시 연맹이 고수했던 원칙론에 힘입은 바 컸던 셈이다.
또 하나, 이번 결정과정에서 연맹은 과연 강초현이 받을지도 모를 마음의 상처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을까. 만약 강초현이 서울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면 그의 사격인생은 최악의 고비에 직면한다. 누가 뭐래도 강초현은 아직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하기에는 여린 19세 소녀이기 때문이다. 그의 ‘구만리 같은 앞길’은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주간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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