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은 주저없이 마케도니아왕 알렉산도로스를 제일로 꼽는다.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그가 29세때 지금의 스페인에서 보병 5만,기병 9천,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 프랑스-알프스 산맥을 넘어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에 있던 로마를 벌벌 떨게 한 카르타고의 명장군이다. 비록 그가 넉달동안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 남은 병력은 보병 2만,기병 6천명 합해 2만6천명뿐이었지만 적의 허를 치르는 그의 기상천외한 작전들은 지금까지도 연구의 대상이다.<편집자주>
한니발은 왜 알렉산도로스를 첫 손가락으로 꼽았을까.그것은 한마디로 그가 그동안의 전투방식을 차원이 다르게 바꾸어 버렸기 때문이다.그때까지의 전투는 보병은 보병끼리, 기병은 기병끼리 싸우는 게 정석이었다.자연히 전장도 널찍한 평원에서 양쪽이 진을 쳐서 싸웠다.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본 한국축구
②4-4-2의 성공조건
③공격이 최선의 수비
그러다보면 결국은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게 된다.
그러나 알렉산도로스는 발빠른 기병의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했다.그는 순간순간 적의 보병에 대해 기병을 투입하거나 보병을 적의 기병과 싸우게 했다.그리고 발빠른 기병을 이용해 적의 배후를 치거나 옆구리를 공격했다. 매복과 기습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그가 스물두살 때 3만6천의 병력으로 페르시아왕 다리우스의 15만, 20만군대와 각각 두 번이나 싸워 이긴 것도 다 이런 이유로 가능했다. 물론 기병이 강하다고 반드시 전투에 이기는 것은 아니다.
알렉산도로스는 보병 기병으로 이루어진 병력을 '유기적'으로 활용했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게 했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알렉산도로스의 뛰어난 점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는 한니발도 마찬가지었다. 로마가 한니발에게 번번이 패한 것은 그의 예측불허하는 신축적인 작전 때문이었다. 보병과 기병의 톱니바퀴식 운용에 로마군은 번번이 나가 떨어졌다. 한니발도 발빠른 기병을 중시했다. 상대적으로 로마의 주력은 언제나 중무장보병이었다. 한마디로 알렉산도로스나 한니발의 전술의 키포인트는 바로 기병, 즉 기동력에 있었다는 말이다.
요즘 축구에서 4-4-2가 화제다. 4-4-2는 4-2-4의 변형이다.4-2-4는 58년 스웨덴월드컵에서 열일곱살의 펠레를 앞세운 브라질이 들고 나와 우승한 포메이션이다. 수비가 4명 공격수가 4명이지만 가운데 허리 2명이 때로는 공격에 가담하기도 하고 위험할땐 순식간에 수비에 가담한다.그러나 아무래도 허리의 부담이 크다. 상대가 번개같이 역습을 가하면 순식간에 아군의 최후방이 최전선이 된다. 최전방의 공격수 4명도 적진에 고립돼 별로 쓸모가 없게 된다. 또한 4-2-4에서의 공격수는 공격만,수비수는 수비만 하게 돼 '따로 국밥'식 축구를 할 수 밖에 없다.최악의 경우엔 공격-허리-수비진이 따로따로 떨어져 보급로가 완전히 막힌다.
4-4-2는 4-2-4에서 공격수 4명중 중앙의 2명은 그대로 놔두고 좌우 날개를 허리로 끌어 내린 포메이션이다.66년 잉글랜드는 홈에서 벌어진 월드컵에서 이 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우승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지금과 같이 윙백 2명이 순식간에 공격에 가담한다는 것보다는 수비를 우선으로 하는 포메이션이었다. 요즘과 같은 공격적인 4-4-2가 완성된 것은 74년 서독월드컵에서 토탈축구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요한크루이프의 네덜란드팀.형식은 4-4-2지만 선수들은 굳이 자리나 포메이션에 구애받지 않았다.한마디로 전원 수비-전원공격.또한 공격-허리-수비진의 틈새를 가능하면 촘촘하게 해 상대를 강하게 압박했다.하지만 이러한 토탈축구는 '한팀에 적어도 세계적 스타가 최소 6,7명은 돼야 한다'는 약점이 있다.강한 체력, 번개같은 스피드,넓은 시야를 갖춘 스타들이 적어도 11명중 반은 넘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각팀들은 4-4-2를 자기 팀 현실에 맞게 조금씩 변형했다. 토탈축구는 어렵지만 부분부분 순간적인 압박을 가하거나 때로는 양 윙백이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다.이탈리아는 82년 빗장수비중심 체제의 4-4-2로 스페인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4-4-2와 네덜란드의 4-4-2체계 그리고 잉글랜드의 그것은 상당히 다르다. 전통적으로 킥 앤드 러시의 단순한 4-4-2를 구사하던 잉글랜드는 3월1일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는 3-5-2포메이션을 들고 나와 3-0 완승을 거뒀다. '아트사커'로 찬사되는 프랑스의 4-4-2는 엄밀히 말하면 4-1-3-2의 변형된 4-4-2다.포백 바로위에 수비와 공격을 연결해 주는 앵커맨을 두고 활용했다. 기본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다가 순간적으로 일시에 공격으로 전환하는 조직적인 축구다. 네덜란드의 4-4-2는 가장 화려하고 공격적이다. 또한 엄청나게 빠르다.개인기도 꼭 필요할 때 아니면 쓰지 않는다.
4-4-2체제의 최종 수비 4명은 일자로 나란히 서서 순식간에 오프사이드 함정에 상대를 빠뜨린다.그만큼 수비가 두텁다. 그리고 수비-미드필더-공격진의 거리가 짧아 보급로가 쉽게 끊기지 않는다.그만큼 4-4-2는 '양날의 칼'이나 마찬가지다. 수비를 하다가도 순식간에 공격으로 전환하기가 쉽다.수비수가 수비만 하는게 아니라 때로는 공격수가 된다. 공격수도 공을 뺏기는 순간 수비수로 변한다. 한마디로 토탈 사카를 지향한다.고종수가 공격은 잘 하지만 수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반쪽 선수를 뜻한다. 수비를 하다가 아군이 공을 잡을 때는 순식간에 좌우 미드필더나 최종수비 4명중 좌우 2명, 즉 양 사이드백이 공격에 가세해 2-4-4를 만든다. 4-4-2는 바로 공격과 수비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데 가장 좋은 포메이션이다.그만큼 공격-수비의 전환이 쉽다.그래서 세계 유수의 팀들이 이 포메이션을 즐겨 쓴다.
98프랑스월드컵 한국전에 출전했던 네덜란드팀의 4-4-2 포메이션.▶
4-4-2 시스템의 핵은 어디일까.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좌우 날개 4명이다. 좌우 미드필더 2명과 양 사이드 백 2명,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알렉산도로스나 한니발의 전술 핵인 기병이나 같다. 이들은 우선 빨라야 된다. 수비를 하다가도 바람처럼 적의 배후를 쳐야된다.그러다가도 아군이 공격을 받으면 수비로 전환해 그 현장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그만큼 심장도 튼튼해야 한다. 많이 뛰어야 되기 때문에 쉽게 지쳐서는 안된다.
체격도 당당하고 커야 상대와의 1대1전투에서 이길 수 있다. 그 뿐인가.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공격할 때와 수비할 때의 속도를 조절해야 할 뿐더러 전투 전체를 보는 눈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히딩크감독은 이들 4명의 용사를 왼쪽 백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누만,오른쪽 백엔 벨기에 한국 등 체력을 앞세우는 팀때는 빈터,그리고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개인기가 뛰어난 팀을 상대할 때는 역시 개인기가 좋은 레이치허를 배치해 맞불을 놓았다. 미드필드에는 현재 한국팀의 고종수가 뛰는 왼쪽엔 그 유명한 오베르마르스를, 오른쪽엔 로날드 데부르를 주로 쓰면서 세도르프와 젠덴을 백업요원으로 활용했다.
◀칼스버그컵에 출전했던 히딩크 사단의 4-4-2 포메이션.
현재 한국대표팀의 히딩크감독은 왼쪽백에 김태영(김종국) 왼쪽 미드필더에 고종수를 주로 쓰고 오른쪽 백엔 심재원 오른쪽 미드필더에 박성배 서정원을 번갈아 쓰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누만-김태영(송종국) 고종수-오베르마르스 심재원-레이치허(빈터) 박성배(서정원)-데부르(세도르프)가 대등할 정도의 능력이 돼야 히딩크가 꿈꾸는 한국대표팀이 된다는 얘기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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